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_우크라이나 해바라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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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병원 앞 옹벽을 끼고 있는 인도 철제 울타리를 따라서 해바라기 스무여 그루가 줄지어 서있다. 옹벽 위 해바라기는 아래쪽 큰 도로에서 차들이 쌩쌩 내달릴 때마다 이파리를 펼쳐서 메케한 매연한 막으려 애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보름달보다 더 둥근 얼굴은 누렇게 뜬 채 연신 재채기로 몸을 바르르 떨어댄다. 꽃자루에 촘촘히 박힌 열매들은 추위가 오기 전에 야물어야 해서 흔들리는 몸을 겨우 곧추세워 구름 속 희미한 태양을 쫓는다.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_병원 앞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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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골집 담 울타리에 해바라기 씨를 심었다. ‘담 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정지용 ‘해바라기 씨’>’.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 참 모질게도 딱, / 등 돌려 옆집 마당 보고 피었다<박성우 ‘해바라기’>’. 반백년이 지난 지금 도회지 대로변의 해바라기는 누가 심었을까. 근처 집주인이? 아니면 구청에서?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 밭둑을 따라 한 줄만 심었지. /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이정록 ‘해 지는 쪽으로’>’.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해바라기는 나를 외면하고 도로 위를 내달리는 자동차들에게 빠져 들었다. 제 얼굴에 지독한 매연을 뿜어대고, 고막이 얼얼할 만큼 시끄러운 엔진소음을 내질러도 도시의 해바라기는 ‘해지는 쪽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해바라기처럼’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병원 앞 스무여 그루의 해바라기가 문득 끝없는 평원에 노란 물결을 이루는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밭으로 나를 이끈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 난민지원 단체 관계자끼리 소통하는 단톡방에 올라온 한 장의 해바라기 사진에는 평화를 갈망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염원이 해바라기 씨처럼 빼곡히 영글고 있었다. 우리병원 앞 해바라기들도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기원하는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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