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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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라는 여인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은 ‘사치의 여왕’과 ‘독재자의 부인’으로 각인돼 있다. 한동안 잊힌 그녀가 느닷없이 내 기억 속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어머니’로.

  1986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도 독재자 마르코스대통령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대규모 민주화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비슷한 아픔을 겪는대서 동병상련이 일어났을까. 우리 언론에서도 매일 같이 마르코스 일가의 부패상을 까발렸다. 부부의 부정축재만 해도 1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도했다. 나중에 필리핀 당국에서 거둬들인 돈은 3분의1 남짓으로 알려졌다. 당시 필리핀 민주화운동 관련 여러 보도 가운데서도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의 사치 행각이 세인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끝내 마르코스대통령 부부가 망명길에 오르자 그들이 살던 대통령궁의 커다란 방에 진열돼 있는 수천 여 켤레의 구두와 수천 벌의 고급 의상 사진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최고급 구두와 옷들이었다. 우리는 술집에서 불콰해진 얼굴로 식당 문을 나서면서 챙겨 신던 신발들을 보고는 ‘이멜다의 구두’라며 낄낄대며 서로에게 이죽거렸다.

  역사를 잊었을까. ‘사치의 여왕’ 이멜다의 아들이 최근 선거에서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유세장에서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에게 환호하는 필리핀의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1929년생이니, 올해 아흔 둘인 이멜다 여사의 구두는 여전히 화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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