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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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국민MC 송해

 

  국민MC 송해를 맨 처음 본건 1970년대 초 흑백텔레비전을 통해서다. MBC 코미디프로그램 ‘웃으며 복이 와요’로 기억된다. 그는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코미디언 구봉서, 서영춘, 이기동과 함께 어린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엉뚱스런 손발짓에 방바닥을 떼구루루 굴렀다. 요절복통(腰折腹痛)했던 거다. 노래도 잘 불렀다. 코미디언으로 알고 있던 내가 깜짝 놀랐을 만큼. 특히 그의 트롯가요는 구성졌고, 심금을 울렸다. 언젠가 방송에서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는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고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송해가 국민MC로 불린 건 1988년 음악경연프로그램인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면서부터. 그의 나이 예순둘에 사회마이크를 잡았다. 남들 같으면 은퇴할 나이라 한두 해, 길어도 사오 년 정도 진행을 하다 그만둘 줄 알았다. 나의 30대, 40대, 50,대 일요일은 온전히 그와 함께 희희낙락했다. 방송 도중 한상 걸게 차려온 젊은 여성 출연자들과 함께 무대에 퍼질러 앉아 전국 방방곡곡의 음식들을 넙죽 받아먹고는 맛깔스럽게 국민 앞에 소개했다. 대여섯 꼬마가 큰 무대에서 주눅 들까 무릎 구부린 채 기어이 “송해 오빠!”라는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게 할 땐 절로 웃음이 나왔고, 한주의 찌든 스트레스가 풀렸다.

  올해 아흔여섯, 국민스타인 그가 고령으로 하늘의 별이 됐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진한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황해도 재령 땅에서 태어나 6.25때 월남한 그의 평생소원이 무엇이었을까. 이북 고향 하늘 아래서 사회 마이크 잡고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인사 올리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중 :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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