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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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의외로 빨리 달린다

 

  10년 넘게 매일 퇴근길엔 온천천 갈맷길을 걷는다. 십리길 남짓 길지 않은 도심길이지만 이따금 놀라운 광경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여기에는 복원되고 있는 온천천 생태계가 한 몫 한다. 심심찮게 출몰해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연기를 우아하게 펼치는 수달, 쌩쌩 내달리는 자전거에도 아랑곳 않고 느릿느릿 제 갈길 가는 두꺼비, 태평양에서 노닐다가 귀거래사를 꿈꾸며 모천인 온천천으로 회귀하는 연어. 이들이 있어 온천천 퇴근길은 비록 몸은 지쳤어도 발걸음은 가볍다.

  며칠 전 퇴근길엔 상식을 뒤엎는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10m쯤 거리의 갈맷길에서 게으른 움직임이 포착돼 발걸음을 세웠다. 지름 30㎝쯤 돼 보이는 납작한 돌 조각이 꿈틀거렸다. 다가가보니 뜻밖에도 자라였다. 또 하나의 귀한 온천천 손님이라 얼른 사진에 담으려고 스마트폰을 찾았다. 폰으로 카메라셔터를 작동하려는 순간 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무겁고 커다란 솥뚜껑(?)을 짊어진 자라가 눈 깜짝할 새 갈맷길 길섶을 쏜살 같이 지나 온천천으로 첨벙 곤두박질치는 게 아닌가. 네 다리는 굵고 짧았으며, 발가락 사이의 발달해 있는 물갈퀴까지 곧추세운 자라는 날쌔게 도망쳤다. 거북이와 똑같은 생김새인 자라의 놀라운 움직임에 나는 셔터를 누를 기회를 놓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는 물속의 녀석이라도 담으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녀석의 수영솜씨도 박태환 선수 못지않게 빨랐다. 자라를 거북처럼 느릿한 동물로 여겨온 내 오랜 상식의 틀이 한꺼번에 온천천 개울 속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자라는 의외로 빨랐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우에노 주리가 출연한 일본영화 제목이 물속으로 사라진 자라의 흔적 위에 또렷하게 새겨졌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자연은 의외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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