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

'밤마다 사루탄공주는 / 눈같은 대리석에 푸르러이 물뿜는 분수가로 가서 / 흰 물방울을 찰랑찰랑 튀기며 목욕을 한다. // 그때마다 공주의 건장한 노예는 / 뒤돌아서서 물소리를 들으며 / 목욕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 하루 하루 여위워 창백해지면서 // 어느날 공주는 / 빠른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 "네 이름은 무엇 그리고 네 종족은? // 예, 저는 마호멧 족속으로 / 사랑을 하면 / 그 갈망에 죽고마는 / 아스라입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아스라>를 김남조 시인이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시는  시인의 수필집 <그대들 눈부신 설목같이>에 실려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번역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만, 우리말로 번역된 하이네 시집에는 그 어느 곳에도 이 시가 없었습니다. 

김남조의 책은 삼중당 문고판이었습니다. 손바닥만한 크기였고, 세로 글씨로 깨알처럼 쓰여진 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와같은 문고판의 책이 유행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손바닥만한 책을 들고 다니며, 찻간에서나 찻집에서나 벤치에서나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지금의 휴대폰 만큼은 아니지만, 책은 그 시대에 젊은이들의 휴대폰이었습니다. 

나는  <아스라>를 읽고 감동했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암송 하고 있는 시들이 몇개 있는데, <아스라>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시의 독일어 원문을 본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우연히 원문을 찾아서  보니, 번역시가 엉터리입니다.

김남조가 말한 사루탄공주는 원작시에서 술탄의 딸입니다. 술탄을 공주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술탄은 중동지방의 왕을 호칭하는 말이므로, 술탄의 딸은 공주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마호멧  족속이 아니라, 아스라  족속이고, 노예의 이름이 모하멧입니다. 번역시가 노예의 이름과 종족이름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또 공주는 흰물방울 찰랑찰랑 튀기며 목욕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얀물이 찰랑찰랑 흐르는 분수대를 오르내리며 걸었고, 공주와 노예가 조우하는 시간은 밤이 아니라 저녁무렵이었습니다. 

번역자가 시를 왜곡해서 번역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작시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못해서 한 것도 있겠지만,  일불러 고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자는 시를 훨씬 더 관능적으로 그렸습니다. 관능적 덧칠로써 시의 독자가 감추어 놓은 원초적 관음증을 꺼집어 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하이네의 원작시 보다 김남조의 번역시를 더 좋아합니다.

아스라 종족은 실제로 중동지방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시 속 노예의 말처럼, 연애를 하면 그 갈망때문에 죽어버리는 종족이랍니다. 시인은 이 낭만적인 종족이야기를 듣고 시를 썼습니다. 

하이네는 우리에게 서정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도 칼 마르크스와 함께 세상을 바꾸어 보려 했던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조국을 떠나 도망다니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할 무렵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아스라>를 내가 번역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아라비아 공주님은 날마다 저녁 무렵이면 하얀 물이 찰랑찰랑 흐르는 분수대 앞을  오르내렸다. // 젊은 노예는 날마다 저녁 무렵이면 하얀 물이 찰랑찰랑 흐르는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노예는 날마다 창백해져 갔다. // 어느날 저녁에 공주님은 노예에게로 가서 빠른 말로 말했다 :  "너의 이름을 알고 싶구나. 너의 고향과 너의 종족을 또한 알고싶다." // 노예가 말했다 : "나는 모하메트라고 합니다. 예멘에서 왔지요. 나의 종족은 사랑을 하면 죽게되는 그 아스라입니다." 이현도 글

-Täglich ging die wunderschöne / Sultanstochter auf und nieder / Um die Abendzeit am Springbrunn, / Wo die weißen Wasser plätschern. // Täglich stand der junge Sklave / Um die Abendzeit am Springbrunn, / Wo die weißen Wasser plätschern; / Täglich ward er bleich und bleicher. // Eines Abends trat die Fürstin / Auf ihn zu mit raschen Worten: / »Deinen Namen will ich wissen, / Deine Heimat, deine Sippschaft!« // Und der Sklave sprach: »Ich heiße / Mohamet, ich bin aus Yemmen, / Und mein Stamm sind jene Asra, / Welche sterben, wenn sie lieben.« (Heinrich Heine의 시 <Der Asra>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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