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 제목입니다.

톨스토이는 단편에서 주인공 미카엘을 통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있다고 답을 합니다. 사람이 사랑으로 삶. 이 단편의 주제입니다. 

나는 언어학자이니까, 톨스토이의 답에 있는 세 낱말의 언어학적 관계를 찾아내어서, 이 답에 공감을 표현하려 합니다.

사람과 삶과 사랑은 낱말구조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낱말들은 자음 시옷(ㅅ)과 리을(ㄹ)의 틀을 갖고 있고,

모음 '아'가 교집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살과 쌀도 같은  틀구조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언어생활에서 새로운 말이 생길 때, 다양한 근거는 있을 지언정, 절로 툭툭 만들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틀로써 정서적으로 같은 유형의 말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말의 시옷과 리을은 분명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만들어내는 틀입니다. 사람과 삶과 사랑, 그리고 살과 쌀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황금, 돈, 가난, 못남, 잘남은 분명 이 틀이 만들어낸 낱말이 아닙니다.

서기 500년경의 언어 고트어로 쓴 복음서 코덱스 아르겐테우스(銀書)가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안에서 미라와 함께 발견된 일은 언어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책이 발견되자 처음에는 아무도 읽을 줄을 몰랐고, 무슨 책인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은으로 필기되어 있기에, 은서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책은 독일의 언어학자 지브스(Sievers)가 일생에 걸쳐 연구한 결과 해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딕문자라고 말하는 그것이 바로 고트어 문자를 가리킵니다. 코덱스는 오늘날 영어와 독일어의 조상어인 게르만어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 속의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 (HLAIFS =daily  bread)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영어 빵(loaf)과 삶(live / life), 그리고 독일어 몸(Leib)으로, 발음은 같으면서 뜻이 다른 말로 변천을 했습니다.

영어에서 빵(loaf)은 삶(life)과 함께 엘(L)과 에프(F)의 틀을 이루면서 모음을 바꾼 낱말입니다. 엘(L)과 브이(V)의 틀인 삶(live)은 모음을 바꾸어서 사랑(love)을 만들어 냈습니다. 엘(L)과 비(B)의 틀을 이루고 있는 독일어 몸(Leib)은 모음을 바꾸면서 삶(Leben)에 이어 사랑(Liebe)이라는 낱말을 파생시켰습니다.

사람은 쌀이나  빵만으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언어가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의식이나,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 속에는 빵이나 쌀과 더불어 사랑이 일용하는 양식입니다. 그 양식으로 사람은 살을 찌우고 몸을 키우며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현도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6월10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을 고쳐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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