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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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타 라면

 

  누가 알까 부끄러운 고백일 수 있다. 며칠 전 나는 화려한 고급 일식집에서 코스요리의 마지막을 라면으로 마무리했다. 일식집과 라면은 서로 친족 간이면서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으로 어색하기도 해서 묘하다. ‘최상층 요리’와 ‘서민 음식’이라는 이분법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래서 작가 김훈의 정서는 정확히 나를 관통한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혀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씁쓸하다. 쓸쓸해 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 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힌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일식집 라면은 ‘최고급’에 걸맞은 ‘랍스타 라면’이었다. 속살은 회로 먹고, 남은 딱딱한 껍질로 라면을 끓여 달랬던 거다. 비싼 랍스타를 최대한 활용한 ‘서민적인 발상’은 뜻밖에 주효했다. 국물은 생새우라면이나 꽃게라면보다 더 짙으면서도 담백했다. 담백한 맛의 뒤끝은 라면 특유의 인공조미료 부담 없이 시원하게 했다. 랍스타가 끓는 동안 어느 시간대에 면을 투입했는지 모르겠으나, 면발과 국물은 김훈의 것이 아니었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면발은 불어터졌고, 국물은 껄쭉했다. 일식 요리사에게도 ‘서민음식’인 라면 레시피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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