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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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온 붉은 벽돌

 

  멀리 지평선 너머 드디어 집들이 보인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린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땅 한 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집들이었다. 열차는 종착역을 알리는 기적소리를 길게 울린다. 증기 기관차의 하얀 연기가 기적소리를 뒤따라 벌판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마치 제 속내를 기적소리나 하얀 증기가 나타내기라도 한 듯 이미 차창을 넘어 들판 위로 질주한다. 고단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처음 열차에 오를 때 당국에서 했던 약속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지상낙원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땅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덩치 큰 장정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고 했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여자·어린이들에게는 목욕을 하고 각자 거처로 가게 될 것이라고 안내한다. 노약자들은 일터로 나갈 아빠와 남편과 반갑게 인사하고 나치 군인의 안내를 받아 샤워실로 들어간다. 샤워실문이 닫히고 천장에서 물 대신에 독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아비규환이다. 뒤늦게 속았다는 걸 알고 몸부림쳤지만 벽돌에 갇힌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간다. 숨을 꾹 참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벽을 허물어뜨리려 온몸으로 부딪쳐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단단한 벽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15분 만에 다시 샤워실 안은 잠잠해진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6월 나치 친위대(SS)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러가 세운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실에서 유대인 150만여 명이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 28개 동으로 구성된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 한 개가 요즘 부산 온종합병원 로비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와 함께 지난 5월 12일부터 아흐레 동안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캠프’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온종합병원이 100일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난민캠프 봉사 사진전을 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프셰미시우 등 폴란드 국경도시에 설치된 난민캠프의 사진들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뜻도 있다.

  올해 6.25전쟁 72돌을 맞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기원도 담은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건 ‘붉은 벽돌’이다.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이 폴란드 체류 중 전쟁의 비극을 체험하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았다가, 길가에 뒹구는 독가스실 붉은 벽돌 한 개를 주워 와서 이번 봉사 사진들과 함께 전시한 거다. 그 벽돌을 쳐다볼 때마다 색이 점점 핏빛으로 붉어지는 듯했고, 유대인들의 비명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우크라이나나 한반도나 이젠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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