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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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세수

 

  온천천을 걷다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얕은 개울에 서있던 왜가리가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백내장 탓에 눈이 침침해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잔뜩 모은 미간으로 다시 초점을 잡고는 왜가리 쪽으로 미사일 시선을 쏘았다. 왜가리는 긴 부리를 물 위에 솟아오른 바윗돌에 비벼댔다. 한번은 부리의 왼쪽을 비비더니, 곧이어 오른쪽 부리를 바윗돌에 쓱쓱, 문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식사를 마친 내가 종이냅킨으로 입술을 훔치는 것과 빼닮았다. 하얀 종이에는 빨간 양념얼룩이 남았다. 왜가리는 돌부리에 비빈 부리를 이따금 물속에 처박았다. 오물을 씻어내듯이.

  유년 시골 고향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쥐를 잡아먹거나, 어머니가 챙겨준 식사를 마친 고양이는 대청마루나 축담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입 언저리를 훔쳤다. 부드러운 혀로 핥은 발바닥으로 얼굴을 조심스레 닦는 듯했다. 입 언저리 수염부터 깨끗하게 고른 다음 앞 발바닥으로 얼굴 전체를 쓱싹 문질러댔다. 음식을 먹고 나서 더러워진 입 언저리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고양이의 습관이라고 했다. 게다가 입 언저리 수염은 온갖 감각신경들이 몰려 있어서 다음 사냥이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늘 깨끗하게 관리해야 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수돗가에서 물 묻힌 손으로 대충 얼굴만 한두번 문지르는 내게 “게으른 놈이 늘 ‘고양이 세수’한다”고 나무랐다. 더 구석구석 깨끗이 씻으라는 지청구와 함께. 알고 보니 어머니의 해석에 고양이가 조금 억울해할 것 같다.

  왜가리가 바윗돌에 기다란 부리를 비비거나 문지르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나 동물들이나 식후 지저분해진 입 언저리 청결유지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존전략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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