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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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출근길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면도. 깎은 지 겨우 하루 지났는데도 손의 감촉은 며칠째 건너뛴 듯 까칠까칠하기만 하다. 따뜻한 물로 얼굴 피부를 이완시키고서는 비누칠한다. 면도날이 지나가는 자리는 마치 콤바인이 지나간 넓은 보리밭 같이 말끔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들판의 논처럼 평평하지 않은, 턱수염을 깎을 때면 불쑥 찾아드는 따끔한 통증이 상쾌함을 짓밟고 만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굴곡진 턱 선을 최대한 평평하게 펼쳐져 보이게 면도기를 조종하지만 자칫 힘 조절 실패로 통증을 불러들인다. 따끔! 때로 통증의 뒤끝은 새빨간 선혈까지 불러들이고. 그때마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내 게으른 유전자가 전기면도기에 목말라하지만, 어디 날카로운 면도날로 깎는 맛의 시원함에 비길까. 나이 들수록 억세지는 수염의 기세 앞에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운 면도날도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아 무뎌지고 만다. 그럴수록 손목에 힘이 가해지고 수염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닌, 굼뜨고 늙은 힘에 밀려 뜯겨간다. 후과는 턱 주변에 거친 상처들을 매일 같이 켜켜이 덧씌운다.

  출근하지 않는 날엔 면도를 하지 않는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다. 그냥 샤워로만 끝낸다. 세수하면서 만져지는 수염의 까칠함 아래에 깃든 부드러운 얼굴 피부의 아이러니는 절로 나를 콧노래 부르게 한다. 따끔한 칼날의 일일 공세가 일시 휴전상태를 맞게 되는 평화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느낌을 잊을 수 없어 1주일쯤 휴가를 가질 때도 아예 면도를 하지 않고 지낸다. 덥수룩한 채. 희끗희끗하고 억센 수염이 남의 눈엔 보기 흉할지라도, 스스로에겐 더없이 평온을 선사한다.

  퇴임한 지 한 달 된 전직대통령의 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그의 덥수룩한 수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자연인’이었고, 농부였다. 겉치레를 훌훌 벗어던진 그 수염에서 비로소 해방감과 자유를 엿보았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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