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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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동행 4개월째

 

  얼마 전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사소한 망신을 당했다. 출입증 교부절차를 밟는 과정에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는 안내직원의 요청에 양복 윗저고리 호주머니의 지갑 속에서 꺼내보였다. 출입증 대신에 직원은 목소리를 조심스레 내민다. “허××님이 본인 맞으신지, 1933년생인데….” 허걱! 또 실수했다. 내가 내밀었던 건 어머니의 주민증이었던 거다. 벌써 몇 번째 저지르는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물론 그 직원은 단박에 눈치 챘을 거다. 내가 아무리 늙수그레하게 생겨도 아흔 나이로 보이지는 않았을 테고. 사진 속 주인공이 또한 여자였으니.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4개월째. 아직도 어머니의 흔적을 쫓아온 여러 기관들에서 처리하라는 서류들이 날아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는 일이 빠지지 않는다. 자연히 어머니의 주민증을 내 지갑 속에 넣어 보관하게 될 수밖에. 옛날 풍습대로라면 어머니의 물품들은 버리거나 태워야 옳다. 다른 건 풍습을 따랐지만, 어머니의 평생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 있는 주민등록증을 태우거나 훼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버렸다간 범죄에 악용될 수 있고, 태우기에는 또 한 번 어머니를 화장하는 듯해서 망설여졌다. 언젠가는 어머니와의 우스꽝스러운 동행을 끝내야 하겠지만. 지금은 왠지 기분 좋다. 주민증 속 어머니가 여전히 이 세상 사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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