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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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녹색 사열대

 

  아파트 7층에서 뾰족하고 듬성한 정수리를 드러냈던 소나무가 현관을 나서는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오늘도 파이팅!, 하고 응원한다. 덕분에 기운 내고 힘차게 내딛는 내 발걸음을, 녹색 숲을 이루고 있는 벚나무들이 싱그러운 기운으로 북돋운다. 밤새 달님에게 받은 영롱한 힘을 고스란히 내게 안긴다. 맞은 편 옹벽 아래 대나무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힘찬 행진가를 연주한다. 이 모습에 샘이 난 배롱나무는 급기야 작은 손을 힘껏 내뻗어 훨씬 나이 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젊은 배롱나무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도 애교로 받아들일 만큼 나는 이미 그의 친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매화나무는 노르스름한 자식들까지 주렁주렁 데리고 나와 메마른 나의 입안에 침샘을 솟구치게 한다. 어린 매실들 중 몇몇은 기어이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여름 아침 속으로 성급하게 제 몸을 내던진다. 단풍나무, 산딸나무도 서두르는 내 출근길에 손을 내민다. 옷매무새라도 흐트러졌을까, 꼼꼼히 보살피려는 아내나 어머니 같은 손길이다. 시샘의 발로일까. 곁에서 가드 레일을 불끈 붙들고 있던 담쟁이넝쿨이 손을 쭉 뻗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끌려고 한다. 맨손으로 2미터 넘는 옹벽을 기어오른 담쟁이는 내게 삶의 교훈을 일깨운다. 포기하지 말자, 벽이 가로막으면 기어이 그 벽을 타고 넘자! 아침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이 행여 백내장에 시달리는 눈이 더 나빠질세라 아왜나무와 벚나무 친구들이 한껏 팔을 벌려 볕을 가려준다.

  늙은 출근길이 외롭지 않은 건 젊었을 때 무심히 지나쳐야 했던 뜻밖의 친구들로부터 배웅을 받아서다. 친구들, 저녁 퇴근 때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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