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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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아파트 2단지 입구에서 지친 몸을 겨우 달래고는 주머니를 뒤진다. 전자감지기에 출입카드를 대자마자 문이 스르르 열린다. 다시 카드를 호주머니에 잘 갈무리하고 언덕길을 어른다. 떨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내가 사는 아파트 1단지 입구에 도착한다. 이번에는 출입카드가 아니라,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감지기에 갖다 댄다. 혹시 카드를 분실할까 염려돼 엄지손가락 지문을 카드를 대신하기로 했다. 휴대는 간편했으나,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선 이 사람 저 사람 만진 감지기에 손가락을 터치한다는 게 영 마뜩찮기도 하다. 1단지를 통과해서 드디어 105동 현관에 이르렀다. 현관문 역시 굳게 잠긴 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특수기호 3개와 더불어 숫자 7개를 조합해서 만든 비밀번호를 잽싸게 누른다. 서두르는 탓에 왼손으로 숫자 하나를 잘못 눌렀다. 순간 잘 맞춰진 숫자의 조합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는다. 천천히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자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리면 마지막 관문이 등장한다. 아라비아숫자 8개로 구성된 비밀번호를 가만가만 게이트맨의 번호 키에 입력한다. 철문이 열리면 “마이 스위트홈”이다.

  매일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드나들지만,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서 숫자의 조합들이 뒤엉켜버린다면? 나만이 아는, 블록 담장 안에 감춰둔 열쇠로 집을 드나들던 아날로그 시절이 그립다. 디지털시대,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험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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