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한나 아렌트는 재판 내내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다’라는 말만 반복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직접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아이히만의 죄는 바로 그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이 불가피하다고만 말할 뿐 자기가 ‘최종처리’한 유대인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사태를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타인의 희생을 불가피하다고 정당화할 때 우리 모두 아이히만처럼 끔찍한 괴물이 된다. 악(惡)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희생은 불가피하다’라는 말에 동의하고 자신만의 안전을 도모하며 타인의 고통에 침묵할 때 우리는 제 이웃을 뜯어먹으며 외면하는 괴물이 된다. 160p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자기 집으로 끌어오기 위해 남의 살림터에 송전탑을 세우는 것은 국가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한다.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을 어떻게 배분하는지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 사회발전의 이면에는 그 ‘발전’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경제학자 류동민의 말을 빌리면 ‘이익은 위로 가고, 위험은 아래로 배분되는 것’이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다'고 한다. 161p

세상이란 게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인간은 남의 생명을 뜯어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일말의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야차가, 괴물이 되고 만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다. 백성의 한쪽은 먹이로, 다른 한쪽은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위험과 안전으로 양극화하여 통치하는 국가다. 163p

사람을 ‘인간, 동물, 속물, 유령, 괴물’로 분류하고 분류기준을 존재나 유형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 요소로 보고, 관계에 따라 누구에게는 속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 엄기호는 '단속사회'라는 책 속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천민자본주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관저을 소개하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인간, 단독자로서의 존재, ‘나 자신과 불일치하는 것보다는 전세계와 불일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세계와의 불화, 상대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 엄기호가 강조한 인간의 삶을 산다면, 천민자본주의인 대한민국에서 인간다운 삶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단속은 단속으로, 즉 두꺼비집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 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이 스며들면 이내 회로를 내려버리는 그것이다. 

즉 단속은 이질적인 것의 침입을 철저히 차단 외면하면서 동질적인 것에는 과도하게 접속함을 빗댄 말이다.  

또한 타인과의 만남과 부딪힘을 피하기 위해 단지 예의를 갖추고 자기를 단속하며 타인과의 관계는 차단한 채 동일성에만 머무르는 상태, 이것을 이글에서는 단속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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