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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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재건냉면

 

  고향길에 나섰다가 사천 맛 집에 들렀다. 오후 3시라지만, 썰렁할 정도로 한산했다. 끼니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인지, 경기불황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 코로나 감염을 꺼려서인지, 옛 맛이 아니어서 발길이 뜸해진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역시 느끼함을 지독히 싫어하는 가족들을 겨우 설득해서 물냉면을 주문했다. 검은 빛이 감돌만큼 면발은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었다. 고명으로 얹어진 배며, 오이는 투박하고 거칠어서 더욱 고향 맛으로 다가왔다. 예의 뜨거운 불 맛을 품은 육전이 차가운 육수에 잠겨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면발 위에 겨자와 식초를 적당히 친 다음 수저로 휘저었다. 내 손놀림에 허기가 채찍질을 가했을까. 속도가 빨라졌고, 버무려진 면발을 서둘러 수저로 칭칭 감아올려 입에 물었다. 본격 면치기에 돌입했다. 육수에 잠긴 면발은 끝없이 행렬을 이루었다. 어쩔 수 없이, 부실한 잇몸에 겨우 지탱하고 있는 이빨로 면발을 깨물었다.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에도 나는 여전히 양념 버무려진 면발을 입에 물고 있었다. 보기 흉하게. 가위를 집어 들었다가 도로 식탁 위에 놓았다. 냉면과 요리사에 대한 비례(菲禮)로 여겨져서다. 입술이 아플 만큼 깨물어서 겨우 첫 번째 면치기를 끝냈다. 그제야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면발에 탄력을 주려고 고구마전분을 넣었다는 거다. 거의 100% 메밀가루로 뽑아내던 옛 면발의 부드러움은 고구마 전분이 더해지면서 탱글탱글해지고 다소 질겨진 거다(그래도 부산의 냉면집 면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옛 맛에 길들여진 탓에 조금은 찜찜해진 기분을 덜어내려고 그릇째 들고 육수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시원하고 담백했다. 투박하고 거친 오이나 배의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대뇌로 전달되면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게다가 육전까지 더해져 뱃속 든든함까지.

  재건냉면은 여전히 나를 만족시킨다. 내 고향 제1의 맛으로 자랑해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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