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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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하지 않은 고향 산천

 

  아빠 고향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도무지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얼마 전 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함께 고향 길에 따라나섰던 아들이 점점 낯설어지는 시골풍경에 뱉은 말이다.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은 이미 누구도 살고 있지 않다. 주인이 세상 등지자 텅 빈 채 허물어질 날만 쓸쓸히 기다리고 있을 뿐. 사람들이 드나드는 몇몇 집들의 외양은 대한민국 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승용차가 서로 마주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비좁았던 마을 앞길은 도회의 이면도로만큼이나 확(?) 넓게 포장돼 있다. 그 낯선 모습의 길 위로 리어카 대신에 트럭 같은 차들이 씽씽 지나간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의 양옆으로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백일홍, 채송화 정도에 그쳤던 옛 고향의 꽃자리에 국적불명의 이름 모를 기화요초들이, 하얀 드레스 입고 새 단장한 예식장 신부처럼 어색하다. 몇 년 전부터 귀촌살이하는 형마저 길섶 꽃들이 낯설다고 한다. 리어카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아주 좁은 농로까지 시멘트로 포장돼 있는 시골 길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흙 밟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시처럼.

  100가구를 훌쩍 넘겼던 고향은 이제 겨우 50가구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마저 1인 노인세대가 수두룩하다. 아버지 어머니 떠난 고향 산천이 더 이상 의구(依舊)하지 않아 점점 낯설고 어색해진다. 아예 예서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들에게 노루밭은 그저 도회풍을 쫓는 촌스런 여느 시골의 하나로 기억될 뿐일 테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하는 시흥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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