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埋香)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고성군 하이면 쪽을 향해 탁 트인 동쪽의 동네가 향촌동입니다. 지금은 집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옛날에는 큰 들이었습니다. 큰 들이었을 때 마을 이름들은 동향(東香), 서향(西香), 중향(中향), 하향(下香), 신향(新香)으로 향(香)자 돌림입니다. 향과 관련이 있는 동네입니다.

향촌동이라는 행정상의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지향개라고 불렀습니다. 향이 묻혀 있는 포구라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향이 묻혀 있는 곳을 찾지 못하다가 최근에 서향마을에서 암각에 새겨진 매향비를 찾아냈습니다.

매향은 향을 땅에 묻어 침향을 만드는 것입니다. 침향은 땅에 오래 묻어 둠으로써 굳고 단단해진 향을 말하는데 향을 땅 속에 오랫동안 묻어 두면 침향이 됩니다.  침향을 태우면 그을음이 없고 은은해서 침향은 향 중에 으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향을 묻으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내세의 행복을 염원하면서 향을 묻었습니다. 향을 묻고 세운 비가 매향비입니다.

매향의 신앙풍습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근거합니다.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때 미륵정토에 함께 살겠다는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불가에서 매향의 최적지는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는 곳이라고 전해 옵니다. 매향암각이 있는 삼천포 향촌동 서향마을도 실개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 매향암각은 태종 17년(1417) 2월 15일과 태종 18년 2월 15일에 수륙무차대회를 베풀어 포락에 향목을 침향했다고 적고 30명 가량의 시주자 명단을 올려 놓았습니다.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는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운 매향비가 있습니다. 이 비문에는 승려를 중심으로 한 무려 4,100명이 결계(結契)하여 향을 묻고 내세의 행운과 국태민안을 빌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매향비는 삼천포 서향마을과 곤양면 흥사리 외에 네 곳이 더 있는데 기록상으로 세종 9년(1427)의 것이 가장 마지막입니다. 조선의 억불정책이 심해지면서 이러한 풍습이 사라졌고 근대 들어 매향의식 대신에, 잡은 물고기를 살려주는 방생재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현도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00년 2월 10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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