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Peter Bichsel)의 단편 <책상은 책상이다>에서는 무료한 삶의 변화를 기대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삶의 변화를 위해 지금까지 써 오던 사물의 명칭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침대를 그림이라 불렀고 "나는 피곤하니 그림으로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걸상을 시계라고 명명했습니다. 노인은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에 앉아 팔을 책상에 괴었습니다. 책상을 양탄자라 불렀습니다. 아침에 노인은 그림을 떠나 옷을 입고 양탄자 옆에 있는 시계에 앉아 무엇을 어떻게 부를까 숙고했습니다. 신문을 침대라고 말했습니다. 거울을 걸상이라 말했습니다. 시계를 사진첩이라고 말했습니다. 옷장을 신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양탄자를 옷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을 책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첩을 거울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그림에 누워 오래 머물렀고 사진첩이 9시를 울리자 노인은 발이 얼지 않도록 옷장 위에 섰으며, 신문으로부터 옷들을 꺼내어 입고 벽에 있는 걸상을 보았습니다. 또 양탄자 옆의 시계에 앉아서 어머니의 책상을 찾을 때까지 거울을 넘겼습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 발이고 발은 아침이고 아침은 남자입니다.

가끔 노인은 새로운 언어로 꿈을 꾸었고 학교시절의 가곡을 그의 언어로 옮겨 나직이 혼자서 불렀습니다. 차츰 노인은 번역하기도 어렵게 되었고 예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거의 잊어버렸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웃으로부터 고립됐습니다.

외솔 최현배가 살던 시대에 비행기를 날틀이라 부르고, 자동차를 길틀, 학교를 배움집, 전화기를 번개 딸딸이라고 부르자는 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순우리말 쓰기를 위해 노력했던 외솔은 자신의 성씨 최(崔)를 감메로 바꾸어 썼습니다. 중국 식으로 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도 평산 봄시내, 월성 푸른메, 김해 쇠방우 …처럼 우리 식으로 바꾸어 부르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솔이 평생 전력했던 많은 주장들은 사람들이 써 주지를 않았습니다.

페터 빅셀의 그 노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책상을 꽝하고 때렸습니다. "변해야 한단 말이다. 변해야만 해."

그러나 변화나 개혁은 혼자만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현도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00년 1월 27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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