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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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무장아찌

 

  오전 들일 마치고 집에 들어선 어머니는 우물가에서 대충 손을 씻고는 부리나케 장독대로 다가간다. 어머니 가슴팍 높이의 커다란 장독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 끄집어낸다. 노란 된장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무장아찌다. 무는 된장의 짠맛에 기가 눌린 탓인지 잔뜩 움츠린 듯 쪼그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된장 찌꺼기를 대충 훑어낸 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했다. 쫑쫑쫑쫑, 쓴 무장아찌를 종발에 담아 후다닥 점심 밥상에 올렸다.

  시장했던 아버지는 찬물에 만 꽁보리밥을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고는 무장아찌 한 점을 아삭아삭 깨물었다.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듯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어린 나의 수저만 갈 곳을 잃은 나그네처럼 밥상 위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답답했던 어머니가 억지로 밥 한술 뜨게 해서는 그 위에 장아찌 한 점을 올린 다음 억지로 내 입에 물렸다. 으으으! 그 구릿한 냄새라니. 나는 마치 벌레라도 씹는 듯 오만상을 찌푸려야 했다. ‘벌레라도 씹는 듯’이 아니라, 때로 무장아찌 종발에서 진짜 구더기가 꾸물거리는 걸 수없이 목격했으니까. 비위 약한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잊힌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라 무장아찌 얘기를 꺼냈더니, 지난 주말 아내가 밥상위에 차려냈다. 말끔한 장아찌에서 옛날의 역겨움은 느낄 수 없었고, 나름 식감의 뒤끝이 깔끔했다. 어머니의 장독대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됐고, 이제 어머니마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이 여름 마트의 무장아찌로라도 향수를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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