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고대 문화 최후의 위인이었고 중세 새로운 문화를 탄생하게 한 선구자 였다. 주요 저서인 '고백록'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신과 영혼이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은 한 권의 책이며,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라고 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지금의 북아프리카 지역인 로마의 누미디아 속주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마니교 신자인 아버지 파트리시우스와 기독교 신자인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그가 웅변에 소질을 보이자 그를 정치가로 만들려는 아버지로 인해 철학자 아플레아우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당시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마니교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에 매력을 느껴 마니교도로 지내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열일곱살에 노예출신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여 14년을 같이 살면서 아들까지 낳았는데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런 그를 받아들일 수 없어 절교를 선언했었다고 한다.

그는 마니교 지도자들의 지적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회의를 느껴 잠시 신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가 마니교도 동료의 추천으로 타가스테,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 등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밀라노 주교인 성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강론을 듣고 감동을 받아 386년 여름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다음 해 북아프리카로 돌아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상황 속에서도 동료들과 수도회를 설립하여 수도사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391년 북아프리카 도시 히포 레기우스에서 발레리우스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을 받은 후 인간의 공로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며 신학적 인식론과 교회론, 영성신학 등의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395년 발레리우스 주교가 노쇠하자 공동 주교로 선출되어 4년 동안 주교를 보좌하다가 발레리우스 주교가 사망하자 히포 교구의 주교가 되어 평생동안 히포 교회와 북아프리카 교회를 위해 사목하였다. 

427년 반달족이 침입하자 피난민들을 돌보다가 열병에 걸려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야만족과 기독교의 승리'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군대에서 교육 받았던 야만족들의 지도자들은 로마의 문명을 동경했지만 세속적 영광을 경멸했던 기독교가 서서히 로마인들의 정신을 사로 잡아 마침내 그들의 전투적이고 시민적인 삶의 방식을 도태시켰다고 한다.

 

- °로마제국 쇠망사 (The History of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 지식백과, 왜 로마는 야만족에게 붕괴되었는가?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정치철학 다시보기
- 지식백과, 두산백과,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 사진그림은 안토니오 로드리게스가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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