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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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휴일 아파트단지를 걷는데 길 위에서 구르는 나무열매가 발길에 차였다. 노란 열매였다. ‘청매실’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는 ‘골드매실’인가. 요즘 아침 출근길마다 간밤에 나무에서 떨어진 이 녀석들을 만났다. 이 나무들은 매년 이른 봄 산수유와 벚꽃 사이에 꽃을 피웠고, 나는 당연히 매화꽃으로 알아왔다. 한데 지금 눈앞의 노란 열매는 매실이라기엔 살구에 가까웠다. 발밑의 노란 열매를 하나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살짝 짓이겼다.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났다. 속살에서 풍기는 냄새가 코끝을 끌어당겼다. 수년간 확정적 편향에 빠진 채 매실로 인식해온 후각은 지레짐작한 시큼한 냄새에 멈칫거렸다. 킁킁! 콧구멍을 잔뜩 벌름거리면서 노란 열매의 속살을 헤집었다. 시큼함보다는 달콤함이 짙었다. 삼십분 걷기로 갈증을 느끼던 입안의 침샘이 갑자기 솟구쳤다. 달콤한 살구였다. 나는 10여년 가까운 세월 아파트단지 내 살구나무를 매화나무로 착각해왔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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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나무에 매달린 자태나 꽃 색만으로 둘을 확연히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여름철 길 위에 굴러다니는 노란 열매들도 수없이 봐왔지만 이번처럼 매실인지 무엇인지 확인해보려 하지 않았다. 매실도 살구처럼 노란 살색을 하는 것도 많으니까. 시각이 놓쳤던 정체를 후각이 바로잡아줬다. 게다가 손가락으로 짓물러지는 촉각도 속살이 물컹한 살구와 단단한 매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아직도 코끝에서 풍기는 듯 노란 살구의 달콤함이 유년의 여름추억을 점점 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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