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월드

세계와 월드

세계(世界)는 시간과 공간의 합성어입니다. 세(世)는 일, 월, 년에 이은 더 큰 단위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흐르는 시간의 긴 마디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단위가 세(世)입니다.

계(界)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세계는 나의 해석대로라면 흐르는 시간에 배를 띄워 놓고 내 힘으로 노를 저어 다닐 수 있는 영역입니다.

흔히 공간을 뺀 말로 세상(世上)이라고도 말하는데, 세상은 흐르는 시간의 위입니다. 시간 위에 만물이 있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세계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사상(四相)이 있는 공간입니다.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생겨나서 늙고 병들고 죽고, 생기고 머물다가 변하고 흩어져 없어져버리는 곳입니다. 세상 만물에게는 사상의 마디가 긴 것과 짧은 것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세계를 의미하는 영어 월드(world)에도 사람에 더하여 시간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월드는 현대영어의 조상어인 고대색슨어로 베어올드(werold)입니다. 베어(wer)와 올드(old)가 합성된 낱말입니다.

우선 고대색슨어 베어올드에서  베어(wer)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라틴어 비어(vir)가 어원입니다. 이 낱말은 늑대인간이란 뜻의 독일어 베어볼프(Werwolf)와 영어 웨어울프(werewolf)에 잔존합니다. 

그리고 색슨어 베어올드의 올드(old)는 지금의 뜻 그대로 입니다.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늙은, 낡은, 나이를 먹은, 오래된....". 

월드 혹은 세계가 시간으로 조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동서양 고금의 진리입니다. 태초에 시간이 먼저 와 있었고 그 위에 만물이 터를 잡은 것입니다.

이태백은 사람이 사는 세상을 두고,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말했습니다. 이태백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만물과 함께 여관에 잠시 머물고 있을 따름인데, 저 멀리서 나그네로 온 시간이 무단히 휘이익 스쳐 지나가며 나의 머리카락을 백발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살고있는 세계는 그렇다고 치고, 세계 바깥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있는 절대자의 세계. 거기에는 대체 시간이 있을까요? 부처님이 먼저 대답을 내 놓았습니다. 절간의 대웅전 기둥에 걸린 주련글입니다. 

"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를 뻗쳐도 항상 오늘이라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이현도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10월 14일자에 게재한 나의 글을 고쳐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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