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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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우크라이나의 종전을 고대하던 세계인들은 또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러시아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대도시 쇼핑몰을 포격했기 때문이다. 민간인 수십 명이 죽고, 수백여 명이 다쳤다는 소식이다. 현장의 비참한 상황들이 속보로 전해질 때마다 아비규환이 떠오른다.

  국내의 우크라이나 지원 카톡방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포성처럼 들려온다. 마냥 걱정만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할 수 없다며 의약품이나 생필품 지원에 더 노력하자고 서로를 북돋운다. 몇몇은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해서 우크라이나에 난방기구나 방한용품들을 모아서 보내자고 제안한다. NGO관계자들은 모두가 우리나라 일처럼 적극적이다. 찡하다.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재단도 최근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바자를 열어 성금 2천여만 원을 모았다. 의료장비 부족으로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도시지역 병원에 초음파 등 의료기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가운데 민간단체 중심의 인도적 지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수 있으니, 정부 차원의 우크라이나 지원책이 제시돼야 한다는 우리국민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지난 70여 년 전 6.25전쟁 때 유엔의 도움으로 평화를 지켜내고, 오늘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느냐, 는 논리를 대면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되돌려 드릴 때”라는 거다. 반박하기 어려운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논리다. 하지만 지식인들 사이에는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어 우리만 손해 보려 하는 건 멍청한 외교’라며 우리정부의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력히 반대한다. 인접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봐가면서, 우리 국익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인 거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또 한편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씁쓰레해진다.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은 70여 년 전 한국전쟁에 전투병을 보냈다. 당시 참전을 놓고, 그들 나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되지 않았을까. ‘괜히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의 전쟁에 끼어들었다가 강대국 소련이나 중국에 밉보여 우리만 손해 보는 일이 생기므로 절대 참전해서는 안 된다!’.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그런 ‘한국전 참전반대’ 주장들을 접했다면, ‘인도주의와 인권, 평화를 모르는 개소리’라면서 16개 우방국의 지식인들을 욕하지 않았을까. 6월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나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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