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릴리전

언어는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영어와 우리말이 다른 것은 낱말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다르다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특히 종교라는 낱말을 보는 시각 차이는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보니 토속종교뿐만 아니라 외래 종교와 신흥종교까지 복잡하고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 죽음,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는 내적 에너지가 되고 있어 인류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보는 시각차 이 때문에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종교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세계 1차 대전과 2차대전을 통해 목숨을 잃은 사망자보다도 종교분쟁으로 희생된 사망자 숫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끔찍한 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로 간의 관점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릴리전(Religion)은 '다시'의 뜻을 지닌 접두어 리(re)-와 리전(ligion)의 결합입니다. 리전(ligion)의 어원은 라틴어 레고(lego-)에서 유래합니다. 레고(lego)-는 '읽다'라는 뜻 외에 '선택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레기오(legio-)는 '선택된 무리, 선택된 땅'을 뜻합니다. 이 당시에 선택된 무리라면 로마 군대를 의미했고, 선택된 땅은 로마의 식민지를 의미했습니다. 릴리전(Religion)이 기독교적 신앙이라는 의미로 유럽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6세기경이었습니다.  

 

릴리전의 어원 속에는 다시 선택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왜 다시 선택되기를 갈망할까요?  

 

릴리전은 기독교적 관념에서 출발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 멀어진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기를 갈망합니다. 이 릴리전을 종교(宗敎)라고 번역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종교의 어원은 천태종의 개창조인 지의(智㑁) 대사의 말에서 유래합니다. 지의 대사는 수천에 이르는 부처님의 경전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서 <묘법연화경>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부처님 말씀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를 마루 종(宗) 자와 가르칠 교(敎) 자를 합쳐 종교라고 했습니다. 그 후 이 낱말은 유교, 도교 등과 같은 훌륭한 성인들의 가르침이나 인간 존재와 원리에 대한 근원적인 가르침에 확대 적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동양적 사고방식의 종교는 신(God)과 관계없이 훌륭한 가르침이라는 뜻인 반면, 서양적 사고방식의 릴리전은 신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릴리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구원받기를 염원했고, 동양인은 종교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가르침을 갈구해 왔습니다.  

 

이현도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7월 1일 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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