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균관

김일성 주석이 1992년 개성의 고려 성균관을 방문해 "국자감이 나온 것이 992년이니 고려성균관의 창립연도를 그때부터 보면 올해가 1000년이 되는 해이므로, 지금 세계에서 제일 력사가 오래다고 하는 이딸리아의 빠르마종합대학(1064) 보다 70여년이나 앞서 창립된 세계적으로 제일 오랜 력사를 가진 대학"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려 성균관은 설립 당시 국자감으로 불리다가 이후 성균감, 그리고 성균관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고려 성균관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 인문 사회계 3개 학과와 율학, 서학, 산학 등 자연과학 기술계의 6개 단과대학이 있었으며, 학생 정원은 인문 사회계 900여 명, 자연과학 기술계 400여 명 등 1천3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수업연한은 인문 사회계가 9년이고, 자연과학 기술계가 6년이었습니다. 

 

또 연구소 겸 도서관으로 청연 각과 옥문각이 있었고, 장학 재단으로 양현고를 두어 학생들에게 학업지원을 했습니다.

고려 성균관은 명실상부한 유니버시티(University)이고 종합대학교입니다.

고려 성균관을 졸업한 유명 인사로는 <은대집>과 <파한집>의 저자 이인로,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이규보, 고려 충신이며 대학자 정몽주 등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1992년에 고려 성균관을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개성 경공업 단과대학을 고려 성균관으로 이름을 다시 찾아 붙이고는 학부도 고려인삼 학부, 고려도 자기 학부, 고려 수예 학부, 고려 방직 학부 등으로 확대해 경공업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고려 성균관을 남한의 성균관대학교처럼 대학교라는 이름을 넣지 않은 이유는 관(館) 자가 이미 대학이란 의미이므로, 굳이 대학이란 말을 중복해 붙이지 않은 것입니다.  

 

북한은 옛 고려 성균관 건물을 고려 박물관으로 고쳐 사용하면서, 개성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관광객이 관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현도 글
- 이 글은 월간반야 2008년 4월 제89호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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