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려 (逆旅)

그러니까 열 살 이전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그 동네에 살았으니까요. 그 동네에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삼베옷을 입었고 얼굴은 홍안이었습니다. 하얀 수염을 흩날렸고, 하얀 상투머리였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건달기가 있는 형의 할아버지라 몹시 의외였습니다. 그 건달과는 달리 노인을 존경 어린 눈으로 보았으니까요. 

노인은 들 가운데로 흐르는 도랑에서 붕어를 낚아서 대야에 담았다가, 해거름녘에는 잡은 물고기들을 도랑에 도로 비웠습니다.

내가 도랑에 갈 때마다 노인은 어김없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잡은 물고기를 도랑에 도로 비우고는 대바구니를 허리춤에 차고 노을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그 노인의 낚싯대 옆에 다리를 펴고 앉았고, 노인은 우리에게 노래 하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노인은 독립군 노래라며, 장엄하고 비장하게 불렀습니다.

"꽃 피는 삼천리 꽃 마중을 갈 거나. 얼싸 얼싸 좋구나. 앞날의 대한은 우리의 것. 얼싸 얼싸 좋구나 앞날의 대한은 우리의 것."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사입니다. 근래에 사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 노래는 찬송가였습니다. 

하얀 상투머리에다 하얀 수염, 삼베옷, 짧은 낚싯대와 노을 속의 노인 그리고 독립군 노래.

그러던 어느 날 들 가운데의 도랑가 길을 지나가는, 그 할아버지의 꽃상여를 보았습니다.

열 살 때쯤에 나는 그 동네에서 이사를 해 떠났습니다. 

 

이현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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