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장경각

스위스 동쪽의 알프스 산자락에 상갈렌(St. Gallen)이라는 고도(古都)가 있습니다. 인구 7만 5,000명의 고색창연한 이 도시는 오늘날도 상갈렌 칸톤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동스위스 경제의 중심지입니다. 상갈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10만권 가량의 고서와 2,000권의 희귀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수도원 도서관(Stiftsbibliothek)입니다. 희귀 필사본의 대부분은 중세 초기와 중세 전성기에 수도승들에 의해 필사된 것들입니다. 이른바 15~16세기 상갈렌의 르네상스를 통해 유럽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원천이었습니다.  

법보사찰인 해인사 장경각에 8만 4천여의 고려대장경이 조선 사람에 의해 이운된 해는 1302년입니다. 대장경이 강화도에서 장경각으로 옮겨진 덕택으로 임진왜란과 육이오 같은 전란에서도 지금까지 끄떡없이 원형을 보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정감록 등의 예언서는 가야산을 가리켜 전쟁, 흉년, 질병의 삼재(三災)가 들어올 수 없는 곳 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예언이 지켜진 것입니다.  

대장경을 만든 고려 사람들은 불법(佛法)의 적극적인 유포를 위해 필사하는 것보다 많은 책을 만들 수 있는 목판을 생각해 냈고, 이러한 생각이 고려대장경의 조성이라는 불사(佛事)에 이른 것입니다.  

원목을 자르고 대패질을 해서 바닷물에 담가 나무의 진을 뺀 다음 그늘에 말리고, 큰 절을 올리면서 한 자 한 자 글을 새겼습니다. 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해 옻칠을 하였고 또 틀어지지 않게 모서리를 구리판으로 처리하는 정성을 보였습니다. 

해인사 장경각이 더욱더 자랑스러운 것은 상갈렌의 수도원 도서관이 오늘날 몇몇 관리인을 통해 관광객이나 맞이하고 있는 과거의 도서관이라면, 장경각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수행승의 기도와 수도 속에서 외호(外護) 되고 있으며, 스님의 설법이나 역경 작업을 통해 생생하게 생동하는 문화의 원천이라는 사실입니다.  

 

이현도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8월 26일 자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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