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관음사의 연꽃 문양

고려 시대였습니다. 병든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어려운 살림을 하던 운나라는 목공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대대로 도기를 만드는 집안의 도공이었는데 손재주가 좋아 건넛마을의 목수 영감으로부터 목공일을 배우게 되었고, 목수 영감의 딸 꽃님이 와도 약혼을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송악산의 관음사 창건에 강제 동원되어 노예처럼 일을 했습니다. 운나는 천정에 매다는 닫집과 문짝의 연꽃을 조각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의 조각 솜씨가 너무나 뛰어나서 관음사 스님들과 개경 관리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약혼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관리와 스님이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고향마을에서는 부잣집 아들의 노략질로 꽃님이가 자살해 죽고 어머니는 꽃님이의 죽음에 대한 앙갚음으로 부잣집에 불을 질렀다가 관가에 끌려가 비명으로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운나는 도끼를 쳐들고 절간의 작업장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손목을 내리쳤습니다. 이곳에 끌려와 어머니와 약혼자를 죽게 만든 것은 자신의 손재주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도 관음사 대웅전 뒷벽에 있는 두 짝의 문 중에서 한 쪽 문짝은 미완성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개성 관음사의 설화 구성은 남쪽 절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설화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민중의 고통과 울분과 반항이 테마입니다. 대웅전 뒤에 가서 문짝을 살펴보았더니 연꽃새김이 독특했습니다. 운나의 솜씨인가? 남쪽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이었습니다. 연꽃 문양 속에는 팔 잘린 운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현도 글
- 이 글은 월간반야 2008년 4월 제89호에 게재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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