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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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조요청

 

  휴일 초저녁 아들과 함께 한 시간쯤 온천천 갈맷길을 산책했다. 밖은 몹시 무더웠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로 뜨거워진 몸부터 식혔다. 찬물을 뒤집어썼는데도 몸은 시원하기는커녕 조금씩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오후 내내 팝콘 같은 군것질과 더불어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드라마 정주행에 푹 빠졌더니 소화불량처럼 속이 더부룩하긴 했다. 산책을 했는데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채 강풍 상태의 선풍기 앞에서 강제로 몸을 급랭시키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샤워하러 화장실로 향하는 아들에게 급히 소리쳤다. 아들, 택시 좀 불러라, 응급실 가야겠다, 아니, 차라리 119를 불러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고, 머릿속은 온통 죽음의 공포가 지배해버렸다. 여러 증상들을 종합해보건대, 고혈압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의 나래를 뇌경색에까지 펼쳐나갔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고, 내 귓속으로 아들이 급히 119대원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주머니 속에서 공황장애 약을 끄집어내 두 봉지를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가쁜 숨길이 조금씩 잦아들고, 혼미해지던 정신도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화 너머 119대원이 “지금 출동해야 하냐”고 자꾸 채근하자, 아들은 걱정스레 아버지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약 먹었더니 조금 가라앉는 것 같다, 119 부르지 마라!

  사실 지난 주말부터 나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새벽에 꾼 꿈 때문이다. 한참 일 얘기를 나누고 있던 친구가 의자에 앉은 채 책상 위로 스르르 무너져 내리지 않은가. 너무나 놀란 나는 재빨리 친구를 바닥에 눕히고는 벨트를 풀고, 주변에 소리쳤다. 빨리 119 불러! 의식이 혼미해져 가는 친구는 점점 내 품 속에서 맥없이 처지고 있었다. 나는 잠들지 말라, 며 그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울부짖으며 또 다시 사람 쪽으로 소리쳤다. 119는 언제 도착하느냐?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침대 위에서 한동안 깊은 공포감에 휩싸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조금 전 응급상황이 짐작이라도 되듯 나는 땀에 전 채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주말과 휴일 내내 나는 그 공포의 꿈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고, 끝내 수인(受忍)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공황발작에 이른 모양이다. 그날의 꿈은 친구가 아닌, 나의 대한 예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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