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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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손님!

 

    부산진구 당감2동 온종합병원 옆에 제법 오래된 도넛가게가 있다. 파티셰가 칠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에게서 짐작한 것도, 커피를 내리는 팔순 언저리의 할머니 바리스타에게서 가게의 연륜을 가늠하는 것도 아니다. 한결 같은 도넛 맛에다, 마치 손님용 홀과 한 공간인 듯한 부엌 곳곳에 켜켜이 쌓인 기름때와 천장과 벽면 여기저기에 배인 두 분의 손맛 냄새에서 ‘노포’의 향기가 풀풀거린다.

   미안합니다, 손님!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도넛을 사러 들렀다가 거꾸로 할머니로부터 먼저 인사를 받았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한’ 쪽은 내 쪽일 텐데. 도넛과 크로케에 핫도그까지 가득 담아 계산대에 다가서는 내게 할머니는 싫지 않을 만큼 물가타령을 털어놓는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예전엔 기름(식용유) 한 통에 3만원이었는데, 요샌 10만원은 줘요 합니다. 한번 튀겨낸 기름을 다시 사용하지 못해 도넛을 많이 만들지 못한 날이면 아깝기도 하고요.” 으레 식당에 들를 때면 듣게 되는 밀가루나 채소 따위의 가격 폭등은 꺼내지고 않고, 기름값만 늘어놓는다. 아들 둘이 유독 노포의 도넛이나 크로케를 좋아하는 데는 느끼한 기름에 튀겨냈지만 그 맛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다’는 거다. 아들의 반응에 미뤄봐서 할아버지할머니는 식용유를 결코 재활용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너무나 많이 올라버린 식용유 값이 부담스러웠을 테고,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인사말로 꺼냈는지 모르겠다.

   배추나 상추 값이 올라서, 밀가루가 비싸져서, 고기 값이 뛰어서…. 식당 벽면 메뉴 표 옆에는 갖가지 이유들을 대면서 어쩔 수 없는 ‘가격인상’임을 ‘알아서’ 이해하란다. 이런 데에 비하면 그날 노포 할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씀은 분명 결이 다르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간 단골이 감동했으니까. ‘노포’의 비결은 주인장의 손맛만큼이나, 몸에 배인 단골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날씨가 찌뿌드드하다. 할머니가 내린 시원한 커피 맛이 그립다. 이번 주에 한번 찾아가 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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