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세스카 결혼을 결심하다 (2/6)

나는 여행하기 직전에 우리 독서클럽에서 보내주어 읽었던 '코리아' 라는 책 속의 '금강산'과 '양반'이라는 한국말이 생각났다. 내가 "코리아에는 아름다운 금강산이 있고 양반이 산다지요?" 하고 말했더니 그 분은 무척이나 놀라면서 반가워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을 알아주는 외국인이 드물었고 또 알아도 일본의 악선전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자기 조국 '코리아'를 그것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분을 무척 기쁘게 한 것 같았다.

그때 지배인이 '베른'에서 온 기자가 그를 찾아왔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 분은 "덕택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급히 자리를 떳다.

다음날 나는 신문에 실린 그분의 사진과 신문 한 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분은 "한국이 독립해야 아시아의 평화는 이룩될 수 있다"고 열렬히 주장하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나는 그 기사를 오려 봉투에 담아서 내 이름은 쓰지 않은 채 그분에게 전해달라고 호텔 안내에게 맡겼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나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내주신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리승만" 다음날 다른 신문에 한국독립에 관한 기사가 또 실려서 보내드렸더니 답례로 차 대접을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나는 그분과 함께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서 담소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분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정식 국적과 여권도 없이 동분서주하며 잃어버린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58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넘치는 정열과 젊음을 지닌 한국의 독립투사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이 끌려갔다. 

나는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느끼면서도 외로운 한국 독립운동가의 바쁜 일손을 돕기로 했다. 나는 이 당시 33세로 영어통역관 국제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속기와 타자가 특기였다.

나는 어려서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세 딸중 막내인 나를 남자처럼 강인하게 훈련하여 사업을 계승 시키려고 나를 상업전문학교에 보내고 언어 수업을 위해 스코틀랜드에 유학까지 가게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연마해 온 나의 특기를 가지고 자금과 일손이 한없이 필요했던 이 항일 독립투사를 위해 무료봉사를 자청한 것이었다.

한편, 나의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한국의 애국자에게 마음을 쓰며 성심껏 봉사하는 딸이 못마땅하였다. 

더우기 시간과 경비를 줄이기 위해 식사 대용으로 날 달걀에다 식초를 타서 마셔가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저명인사가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예정을 앞당겨 곧바로 나를 데리고 '빈'의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러 그분과 작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 몰래 그분이 제일 좋아하는 김치 맛나는 사워크라푸트 한 병을 그분에게 전해주도록 호텔 고용인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 후 나는 어머니의 감시를 피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회사를 수신처로 하여 제네바의 그분과 서신 연락을 했다. 

바로 그 해 7월초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 비자를 받으러 '빈'에 왔던 리박사와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분은 한국의 독립문제로 만날 사람이 많아 늘 바빴고 나도 어머니의 감시 때문에 우리가 서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빈'의 명소와 아름답고 시적인 숲속을 거닐기도 했다. 어린 소년처럼 순수하고 거짓없는 그분의 성실한 인품은 나에게 힘든 선택을 하도록 용기를 돋우어 주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한국말을 알게 되었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동경하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한 동양신사라 아무탈이 없을 줄 알고 합석을 했더니 내 귀한 막내딸을 그토록 멀리 시집을 보내게 되다니" 하며 회한섞인 한숨을 지으시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나는 그분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 (사진) 제네바 국제연맹 본부 앞에 선 이승만 (1933.05.02.)
- (사진) 제네바에서 발간되던 '라 뜨리뷴도리앙' 1933년 2월 21일자 머릿기사에 나타난 이승만. 이 기사는 만주문제와 동양정치를 논하고 이승만의 경력과 그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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