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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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백합

 

  해거름 녘 아파트 앞마당을 걷는데 ‘의연함’이 감도는 꽃 한 송이가 눈동자 속으로 훅 들어온다. 하얀 꽃송이가 날이 갈수록 침침해지는 늙은 눈을 정화시키는 듯 밝게 해준다.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요즘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용감하게 꽃을 피우는 녀석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다. 다가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자세히 살펴봐도 얼른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화관(花冠)을 보아하니 나팔꽃이 설핏 연상됐다. 꽃송이를 따라서 줄기를 거쳐 밑동까지 훑어보니 나팔꽃은 분명 아니었다. 온통 푸름이 독차지한 화단에 녀석만 유독 하얗게 눈부셨다. 하늘 위 태양만큼이나. 사진을 찍고는 한참 머릿속 뇌 주름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오랫동안 쪼그린 탓에 무릎관절만 아파올 뿐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름이 모야?’ 버릇처럼 앱친들에게 묻고는 아파트 걷기를 이어갔다. 계속 눈동자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얀 꽃을 떨쳐내려고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아, 하필이면 시선이 머문 곳에 ‘하얀 꽃’들이 무수히 피어있는 게 아닌가. 마치 군락을 이루고 있기라도 하듯. 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사진을 찍어서는 ‘모야모’ 친구들에게 넘겼다. 대만백합이었다. 한 달 전 시골 고향집 마당에서 올해 이미 피었다가 져버린 백합꽃의 아쉬움을 우리 아파트 언덕배기 대만백합꽃으로라도 대신할 수 있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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