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풀벌레소리와 매미소리

 

  어스름 새벽, 뒤창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어둠에 싸인 숲은 조용히 계절의 교향악에 심취한다. 여명에 쫓겨 서둘러 달아나던 어둠도 커다란 나무 등 뒤에 몰래 숨어서 귀를 기울인다. 동녘 빛에 제 몸이 스르르 흔적 없이 녹아드는 줄도 모른 채.

  계절은 소리다. 퇴근길 해거름이 자작할 즈음 온천천 갈맷길에는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해가 저물면 그 자리를 풀벌레들에게 내어주는 게 아쉬워서 그럴까. 서서히 식어가는 한여름 뜨거움이 못내 안타까워서 그럴까. 그도 아니면 7년의 긴 기다림 끝 짧은 세상살이에 화가 나서 그럴까. 귓속이 찢어질 듯 요란한 매미소리지만, 항상 귓전에 들러붙은 자동차소리나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음과는 거리가 멀다. 매미소리는 그립고, 정겹고, 사랑스럽다. 요란스런 소리 못지않게 또한 매미는 내 동심을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게 머금고 있다. 왕왕! 대는 왕매미(말매미), 밈밈! 거리는 민매미(참매미), 쌔록쌔록! 하는 쌔록매미(쓰름매미). 아버지가 낡은 모기장으로 만들어준 매미채를 들고 매미를 쫓아 산기슭을 헤매던 아이는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렸다. 왕왕왕! 귀청을 때리는 매미소리가 반갑다. 그 소리의 향연도 멀지 않았음을 알기에 아쉽다.

  누구나 동심과 추억을 품고 있는 매미소리가 올해 양산 평산마을 주민들에겐 지독한 욕지기보다 더 듣기 싫을지도 모르겠다. 욕설 시위를 하던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확성기에 대고 매미소리를 틀고 있단다. 주민들이 얼마나 짜증스러울까. 그래도 밤이 되면 풀벌레소리가 기다리고 있어 묵묵히 견뎌내겠지만. 태극기의 신성불가침 영역을 빼앗아 가버린 그들, 이제는 나의 동심 불가침영역까지 침범하려 하고 있다. 나도 짜증스럽다.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