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김동헌 병원장 칼럼

오전 병동 전체 라운딩 도는 온종합병원 김동헌 병원장.(사진:온종합병원 제공)
오전 병동 전체 라운딩 도는 온종합병원 김동헌 병원장.(사진:온종합병원 제공)

20여 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암학회 위암 분야 학술회의에서 지역에 따른 위암의 발생 빈도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당시 참석했던 필자는 동양,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위암 발생 빈도가 서양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는 내용에 주목했다. 서양에서 위암 발생 빈도가 낮은 것은, 동양에 비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감염률이 낮은 데다 소금 섭취량이 매우 적은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제시됐다.

원래 위장은 높은 산도가 유지돼 균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위 내의 점막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사람은 호주의 병리학자 존 로빈 워렌 박사와 내과 의사 베리 마셜 박사다. 1979년 워렌 박사는 만성 위염 환자를 대상으로 현미경 조직검사 결과 50% 정도의 환자 위의 아랫부분, 즉 유문부에서 조그만 갈매기 모양의 나선형 박테리아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위는 아주 강한 산성인 염산(PH 0.78)이 있으므로 그 속에서 균이 산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워렌 박사는 그 박테리아를 위염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추측하고 학회에 보고했으나 ‘거짓말쟁이’란 오명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워렌 박사를 오명에서 구해준 사람이 마셜 박사다.

워렌 박사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발견에 관심을 두게 된 마셜 박사는 1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생체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모든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환자에서 이 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관련 학회에 이를 증명하려고 배양시험에 착수했다. 위 조직에서 균을 분리해 수없이 배양을 거듭했으나 균은 자라지 않았다. 연구에 지친 마셜은 박테리아 배지를 인큐베이터에 넣어둔 채 며칠간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배지에서 균이 자라고 있었다. 마셜 박사는 2일간 배양해보고 균이 자라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하고 배지를 폐기했는데, 깜빡 잊고 며칠 휴가를 떠난 사이에 인큐베이터에 넣어 둔 배지에서 균이 자라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밝혀진 균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다. ‘헬리코’는 나선형, ‘박터’는 세균, ‘파일로리’는 균이 자라는 장소인 위의 유문부를 뜻한다.

위염과 위궤양을 일으키는 원인균을 배양해낸 마셜 박사는 이 균을 없애면 해당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동물실험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마셜 박사는 동물 생체실험에 계속 실패하자 급기야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선택했다. 마셜은 배양한 헬리코박터균이 가득 찬 컵을 꿀꺽 마셨다. 1주일 뒤 구토와 함께 심한 복통이 일어났다. 마셜 박사는 자신이 가진 여러 항생제를 한꺼번에 먹고 나서야 균이 제거됐다. 자기 몸까지 내던진 마셜 박사의 헌신적인 연구 덕에 난치성 질환인 위염과 소화성 궤양이 항생제와 산 분비 억제제로 치유할 길이 열렸다. 지금은 소화성 궤양이 있으면서 헬리코박터균이 있으면 제산제 복용과 함께 제균 요법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의학계 정설이 됐고, 그 공로로 워렌과 마셜은 2005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헬리코박터균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위암과 관련 있다는 논문이 속속 발표됐고,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기관(IARC)은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인자로 분류한다.

위암을 일으키는 요인을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지만 위의 점막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면 표재성 위염을 일으키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짠 음식을 계속 먹게 되면 위 점막이 소실돼 위축성 위염으로 변한다. 위축성 위염으로 인해 위산 분비가 감소함으로써 위 내 증식된 세균은 섭취한 음식 중의 질산염을 ‘나이트로소아민’이라는 강력한 발암물질로 바꾼다. 나이트로소아민과 소금, 헬리코박터균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위염을 암으로 발전시키는 것으로 보고된다.

위암 발생 과정 중 질산염이 강력한 발암물질인 나이트로소아민으로 바뀌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비타민C다. 베타카로틴 비타민A와 E도 발암물질이 점막에서 암으로 변화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위암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짜게 먹지 않아야 하고, 헬리코박터균의 감염 예방이 중요하다. 특히 술잔 돌리기와 찌개를 한 그릇에 담아 먹는 식습관도 균 감염 위험을 높이므로 개인 접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동헌 온종합병원장·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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