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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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기슭 좌판의 감귤

 

   이른 가을의 풍요에 허전해진 산행 나그네들이 금정산 길목에 전을 펼치고 있는 좌판을 기웃거린다. 근처 밭에서 따내온 듯 온갖 채소들이 플라스틱 바가지 넘치게 담겨 있다. 진보랏빛 가지는 차라리 윤기 자르르 흐른다. 잔털이 가시 돋힌 둣한 오이. 막 줄기를 걷어내고 파낸 고구마와 그 줄기. 오래된 줄기에서 새로 돋은 호박잎. 푸릇푸릇 배추. 푸성귀를 담은 할머니의 좌판 그릇은 이미 내 추억의 동심이 넘치고 있었다.

   유년시절 하굣길 길가 밭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가 어찌나 허기를 재촉했던지. 좌우로 눈치를 살피다가 하나를 특 따서 바지에 쓱쓱 먼지를 닦아내서는 이빨로 사정없이 깨물었다. 밭둑에 퍼질러 누워있는 오이, 푸른 잎사귀와 굵은 줄기에 감싸인 땅 속 고구마도 악동들의 서리에서 비껴날 수 없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은 저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채 푸성귀 담긴 좌판 플라스틱그릇 앞에서 기웃거린다. 늙어서 굵은 주름의 중력에 짓눌린, 퀭한 두 눈은 이미 동심에 젖어 초롱초롱해진다. 꽁꽁 숨겨놓은 비자금(?)을 꺼내 모처럼 추억 상차림을 꿈꾸려는 찰나, 노란 감귤이 심통 부리면서 산통을 깨고 만다. 금정산에서 감귤이라니. 근처 금정산 산자락의 생산물들이 순식간에 좌판 그릇 속에서 정체성을 잃었고, 적지 않은 어르신들은 발길을 돌린다. 8월 끝자락 금정산 산자락에서, 성급히 마음속 가을을 펼치던 나도 부지불식간에 여름 한복판 뜨거운 햇살로 풍덩 뛰어들고 말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계절의 변화가 몹시 반갑고 신기하면서도, 금정산 좌판의 감귤이 그만 나를 후덥지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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