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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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파트 옹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이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울긋불긋 단장한 담쟁이 잎의 밝은 기운이 녹음에 가려졌던 옹벽의 강건한 육신을 드러낸다. 뙤약볕 작열하는 한여름 가녀린 팔과 손만으로 직각으로 깎아지른 옹벽을 탔을 게다. 담쟁이는 하루에 한 뼘씩, 조금씩조금씩! 힘에 부쳐 옹벽을 움켜쥔 두 손을 그냥 놔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떨쳐냈다. 그럴 때마다 뒤따라 오르는 동료들이 앞선 이의 엉덩이를 떠받쳐주었다. 뒤쳐진 이가 기운 빠져 포기하려할 땐 위에서 앞장서 가는 이들이 혼신을 다해 발밑의 동료들을 붙들었다. 담쟁이의 분투를 또 다른 이가 응원하고 있었으니 옹벽이었다. 누구도 옹벽의 숨은 공로를 알아채지 못했다. 짙은 녹음에 가려지기도 했지만, 영혼 없는 회색 콘크리트가 살아있는 담쟁이에게 도움을 줄줄 상상이나 했겠나. 울긋불긋 단풍이 비춘 넝쿨 속의 옹벽은 온통 핏줄투성이였다. 매끈하던 그 등짝은 어르신들의 가녀린 팔뚝처럼 핏줄로 뒤엉켜 있었다. 담쟁이가 행여 땅바닥으로 추락할까봐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바람에 옹벽은 등짝의 핏줄이 터지도록 버텨냈던가 보다. 햇살에 뜨거운 기운이 가시면서 가을이 담쟁이덩굴을 사뿐히 지려 밟고서 옹벽을 타고 넘었다. 가을이 옹벽을 타고 이웃 아파트단지로 오르고 있었다.

  가을은 하늘에서 서리처럼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지랑이처럼 땅에서 하늘로 타고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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