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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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몰락

 

  온천천 갈맷길 길손을 가장 먼저 반기는 이가 비둘기. ‘위험동물’인 내가 다가서도 비둘기들은 구구!, 거리면서 목례를 올리기 바쁘다. 감히 지존인 ‘사람’을 무시하는 그 무례함에 경종이라도 울리려고 나는 발걸음을 쿵쾅거린다. 녀석들이 짧은 다리로 오종종 서너 걸음 물러나는 시늉을 하고서는 이내 내 주변을 졸졸 따른다. 조용히 뒤따르던 녀석들이 갑자기 푸다닥!, 소리를 일으키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미 주변의 다른 비둘기들도 어느 한곳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비둘기 떼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다. 땅위에 흩뿌려진 곡식알을 주워 먹으려고 녀석들은 아귀다툼을 마다 않는다. 다가오는 동료들을 부리로, 날갯짓으로 위협하면서 제 앞의 먹이 사수에 다들 혈안이다. 생존 앞에 무슨 ‘평화’를 논해야 하나 싶다.

  비둘기는 내게 오랫동안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비둘기를 보면 ‘평화’를 떠올린다. 유년 거대 국가공사의 기공식이나 준공식장엔 으레 비둘기가 등장했다. 온 국민이 경축하는 행사장에서도 어김없이 비둘기들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순서가 들어 있었다. 개발독재 시절 비둘기는 유엔이 부여한 ‘평화’와 더불어 독재정부가 국민단합용으로 ‘번영’의 상징까지 더했다. 체제교육의 모범생이었던 나는 자연히 비둘기를 경외하게 됐고, 악동들이 마을 근처 대숲에서 벌이던 비둘기사냥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불경스러운 짓이었으니까.

  어스름 저녁, 온천천 갈맷길에서 예외 없이 비둘기들이 나를 반긴다. 한쪽 발로 쿵쿵거리는 내 심통에 놀란 몇 마리가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다. 옛날 행사장 비둘기 흉내라도 내듯. 그들 사이로 현수막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유해야생동물’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마라는 경고 안내문이었다. 비둘기는 어느새 ‘평화’와 ‘번영’의 심벌에서 ‘유해야생동물’로 전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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