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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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보관법

 

  거실 주방 냉장고를 열었다. 입구 쪽에 놓인 들기름 병이 눈에 띈다. 퇴직 이후 귀향해 시골집에 살고 있는 형이 며칠 전 직접 수확해서 짜낸 거라며 참기름과 들기름을 한 병씩 줬다. 기름병을 건네면서 형은 한 가지 신신당부를 했다. 참기름은 밖에 둬도 되지만, 들기름 병은 꼭 냉장 보관해야 한다고. 기름이면 그냥 상온 보관해도 되지 않나 싶어 그 이유를 형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관뒀다.

  참깨와 들깨에서 추출하는 참기름과 들기름인데 왜 굳이 들기름만 냉장 보관하라는 거지. 냉장고의 들기름 병을 바라보다 사이버지식인들에게 이유를 알아봤다. 들기름이 공기나 열, 빛에 약해서란다. 문을 자주 여닫는 일반 냉장고의 문 쪽보다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혹시 김치냉장고 보관으로 들기름이 살짝 얼어도 해동하면 괜찮단다. 영양소 변화도 없고. 나는 얼른 들기름 병을 꺼내 김치냉장고 깊숙이 보관했다.

  고백컨대 난 참기름 병까지 냉장고에 우겨 넣곤 한다. 냉장보관은, 용기의 차가움에서 왠지 그 속 내용물의 신선함까지 담보되는 듯해서다. 냉장 보관하는 참기름 병은 찌꺼기가 가라앉고 특유의 고소한 향과 맛까지 사라진다니 금할 일이다. 옛날 어머니의 부엌 찬장에는 언제나 참기름과 들기름 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들기름병 속에는 부유물이 떠있거나 작은 알갱이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저 기름을 짤 때의 정교함 탓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상온에 보관해야 했던 들기름이 산패(酸敗)해서 그랬던 거다. 부엌살림도 알아갈수록 온통 정교한 과학으로 버무려져 있다.

  형의 들기름으로 뭘 해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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