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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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만세!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서 마스크를 벗는다. 자연스럽게, 익숙한 오랜 버릇처럼. 모처럼 구름 마스크를 벗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어둠에 짓눌려있던 냄새들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풀벌레 소리가 청각을 깨우지만, 콧속으로 스미는 후각만큼 강할 수 없다. 다소 눅진하고 큼큼한 마른 풀내 틈새로 달콤한 향이 헤집고 들어온다. 출근길 내리막길을 한걸음씩 뗄 때마다 점점 달달해지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내 안의 욕심에 이끌려 콧구멍을 더욱 벌름거리게 된다. 아, 취한다! 향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아파트단지 입구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금목서. 어느새 황금색으로 단장했다. 꽃망울이 벌어지고 있다.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파트단지 내에 온통 금목서 향이 그득하다. 꽉 채워진 향은 출근길 사람들의 몸에 묻어, 바람의 등에 실려, 새들의 날갯죽지에 스며들어 근처 골목 구석구석으로 번져간다. 만리까지 퍼져간다.

  지난밤 온천천 갈맷길에서 어둠에게 목덜미가 강제로 짓눌린 채 내 코끝으로 끌려왔다. 압박받던 향기의 처지를 나 몰라라 한 채 나는 웃음기 머금고 은근한 금목서의 향기에 취했다. 이태동안 코로나 방역의 어두운 압박을 피해, 이맘때쯤 도둑고양이처럼 뒤꿈치 든 채 살금살금 마스크를 비집고 살며시 들어왔지 않던가. 몰래 나눈 희미하고 은근한 향연이기에 아쉽고 안타까움이 더했다. 올해 3월 끝내 코로나에게 붙잡혀 1주일이라는 영어(囹圄)생활 속에 강한 열 고문(?)까지 받았지만 다행히 후각과 미각기능은 지켜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3년 만에 금목서 향기 만연한 이 가을 마스크를 벗은 채 오롯이 달달한 시간이 보내는 영화를 누리고 있다. 마스크 해방 만세! 후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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