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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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포항은 포항제철, 또는 포스코로 대변되는 철의 도시다. 인접한 울산과 더불어 대한민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 같은 도시이기도 하다. 한밤중에도 쉼 없이 솟아오르는 공단의 불기둥에서 ‘가난했던 우리’는 영원히 지지 않을 선진국과 경제대국의 태양을 꿈꿨다.

  며칠 전 포항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유년에 삼국유사에서 읽었던 설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야기가 거기서 천년 세월을 공단의 불기둥처럼 재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나에게서 포항이라면 ‘鍊吾郞’이나 ‘쇠오녀’의 이미지여서 무척이나 놀랐다. 나와 아내는 이내 삼국유사의 설화에 빠져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하루를 뒤쫓았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에서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짧게 허락된 시간을 이용해 하선대(下仙臺)까지 3㎞ 남짓 둘레길로 들어섰다. 오래전 연오랑과 세오녀가 갯일 하러 간 것처럼.

  바다에 연해 있는 둘레길은 하나하나 감동적이었다. 때로는 섬돌을 밟고서, 때로는 거친 자갈길 위로 걸었다. 바닷물은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웠다. 크지 않은 파도가 둘레길로 밀려들 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는 물보라가 몸을 시원하게 덮쳤다. 동해 바다는 넓고 깊은 듯 푸르렀다. 아예 바다 위로 길이 열려 있기도 했다. 바다 쪽에서 바라보는 깎아지른 절벽은 지질 교과서였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들이 온갖 암석들에 뒤섞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 손가락으로 움켜쥐면 바스라 질 듯 푸석한 모래흙들이 오랜 세월로 단단한 암석으로 변해 있었다. 파도라는 조각가의 손길을 거치면서 암석들은 ‘여왕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등 빼어난 작품으로 빚어졌다.

  내가 걸어본 곳 중에서 가장 바닷길다운 길이 포항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었다. 포항은 우리 근대 산업화의 상징이면서도 한반도 탄생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연오랑과 세오녀 같은 설화까지 잠자던 동심을 일깨워서 여행객들을 설레게 해주는 건 덤이었다. 아직도 귓전에서 동해 파도소리가 철썩이고, 한밤중 시뻘겋게 솟구쳐 오르던 공단의 불기둥이 두 눈동자 속에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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