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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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줍기

 

  산기슭에는 가을이 쌓인다. 울긋불긋 이파리들이 서둘러 길손들에게 달려든다. 단풍이라기보다 아직 낙엽에 가깝지만 메마른 가슴 속을 촉촉이 적실만큼 감동의 습기를 충분히 품고 있다. 이름 모를 가을꽃들도 길섶에 줄지어 서있다. 함께 걷던 아내의 손길이 분주하다.

  길섶 곳곳에서 어르신들이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뭔가를 찾고 있다. 떨어진 이파리들을 뒤져 속을 더듬고 있다. 꽃망울 매단 키 작은 풀 더미 속도 헤치고 있다. 가을 도토리를 줍고 있다. 이미 작은 비닐봉지가 터질듯 도토리들이 담겨져 있다. 아직 성에 차지 않은지 칠순 노부부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땅바닥을 훑는다. 주섬주섬 집는 주름진 손등에 동심이 얼룩진다. ‘하나 둘씩 주워 모은 욕심이 / 검은 비닐봉지에 차오르면 / 뿌듯한 마음에 자기방어심리(백원기 시 ‘가을 도토리’)’가 생긴다지.

  길섶 도토리 줍는 이들의 눈길이 급경사지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또 다른 이들 쪽으로 향한다. 이들은 아예 작정하고 나선 듯 위험을 무릅쓰고 낭떠러지에서 본격 도토리 수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창 줍다가도 이따금 커다란 나무둥치를 붙들고 괜스레 흔들어댄다. 건장한 청년들이 덤벼들어도 꿈쩍 않을 나무에게 아이 용심부리기 같다. 깎아지른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는 이들의 배낭은 불룩하다.

  가을 길목에서 도토리 줍는 장면이 심쿵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게 산짐승들의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워서다. 백원기 시인도 같은 걱정을 했다. ‘청설모 한 마리 나무 위를 나르다 / 내려다보는 눈빛에 가책을 느낀다 / 청설모 다람쥐 겨울 밥을 뒤지고 / 훔쳐서 비닐봉지를 가득 채웠는지 / 값없이 얻은 열매가 기쁘지만 / 미안한 마음이 한 편에 도사리고(백원기 시 ‘가을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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