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삼광 보리밥 식당

 

  황량하기만 한 허허벌판에 그들만 동그마니 남았다. 시뻘건 석양 뒤에 춥고 깊은 어둠이 똬리를 틀며 숨죽이고 있었다. 혹독한 겨울, 제살이 에이는 추위를 견뎌야만 했다. 섣부른 춘정(春情)에 못내 겨운 동면 개구리를 따라나섰다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아이들의 보살핌을 받고 기사회생했다. 조그마한 발길들이 허허벌판 위에서 발가벗은 채 떨고 있는 그들을 잘근잘근 밟았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다시 꽁꽁 언 땅에 바짝 엎드린 채 혹독한 한파와 싸웠다. 따뜻한 봄날, 만물이 생동할 즈음 밥상 위엔 혹독한 허기의 겨울이 덮쳤다. 허허벌판처럼 각진 밥상은 옹색하고 황량했다. 주변에 둘러앉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양보한 채 제 배엔 찬물로 채워야 했다. 그즈음 천사처럼 등장했던 이가 ‘그 남자들’이다. 피가 나도록 싹싹 문지른 덕에 햇볕에 잔뜩 그을려서 짙은 갈색이었던 피부가 희끄무레해졌다. 마치 분칠이라도 한 듯. 예의 탱글탱글하고 탄력 좋은 근육질의 그 남자들은 밥상 무대 위로 소박한 미인들을 끌어들였다. 곰삭혀서 짙은 지분내 풍기는 된장녀, 바싹 쳐든 고개가 갯내에 절여져 한풀 꺾인 도도한 열무양, 햇볕이라곤 보지 못한 듯 하얀 피부에다 껑충한 팔등신 미녀 콩나물아가씨. 보리군은 처마 밑 제비들의 지지배배 교향악에 맞춰서 초여름 날 소박한 아가씨들과 함께 밥상 무대 위에서 춤사위를 버무렸다. 탱고리듬으로, 지루박으로. 쓱싹, 쓱싹! 고추장 연지곤지와 참기름 향수를 뿌린 무대 위 주인공들은 주변 청중들의 뱃속을 자극한다. 꼬르륵, 꼬르륵! 청중들의 장구소리는 굳게 닫힌 포도청 문을 열어젖힌다. 꿀꺽, 꿀꺽! 동심의 허기는 초로의 건강을 일깨운다. 문득 득도한 듯 초연해진다. 인생이 뭐 별거인가, 이게 바로 삶 자체 아닌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어울리고 버무려져서 살아가는.

  부산롯데백화점 뒤편 삼광 보리밥 식당에서 보리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잠시 동심에 빠졌다. 보리밥은 보리(菩提)밥일지도 모른다. ‘부처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고소하게 일깨워주는.

저작권자 © ONNews 오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