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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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단추들

 

  유년시절 바지는 고무줄 한 가닥으로 지탱했다. 냇가나 우물가에 앉아 방망이로 두드려대는 빨래를 하다보면 바지의 고무줄도 쉽게 상했다. 밖에서 정신없이 뛰놀다 느닷없이 바지가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낭패를 당한 내 또래들이 적지 않았다. 허리띠 역할을 하는 바지의 검은 고무줄은, 요즘 제품과는 달리 탄력성이 크게 떨어졌다. 장난삼아 몇 번 잡아당기다 보면 느슨하게 늘어질 정도였다. 더 이상 흘러내려 엉덩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면 바지의 허리띠가 필요했다. 천으로 만든 띠를 주로 사용했다. 때로 피치 못할 응급상황에서는 볏짚으로 엮은 새끼줄이나 칡넝쿨까지 동원됐다. 고무줄 바지는 무엇보다 노는 데 정신 팔려 있다가 급한 볼일 볼 때 가장 유용하고 편리했다. 그냥 바지를 무릎 아래로 홀랑 끌어내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며칠 전 출근길 새로 산 가을 옷을 챙겨 입었다. 빠듯한 아침시간 서둘러 바지를 입다가 짜증났다. 허리춤을 붙드는 데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단추만 3개나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지퍼에다 가죽 허리띠로 마무리했다. 3개나 달린 작은 단추 채우기가 몹시 성가셨다. 몇 번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서둘수록 단추와 구멍이 서로 어긋났다. 몸이 더워져서 물을 몇 모금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에 들렀다. 허리띠와 단추 하나를 풀고 바지를 내리려는데 아차차! 바지춤이 단추에 여전히 걸렸다. 다시 하나를 풀고 재차 허리춤을 내렸다. 또 다른 단추가 허리춤을 낚아채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바지 속에다 급한 일(?)을 볼 것 같이 마음이 초조해졌다. 땀까지 바작바작 났다.

  볼일을 보고 다시 여러 절차대로 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곰곰 생각해봤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이 바지를 만든 디자이너의 의도가 무엇일까. 한두 개 더 매달린 허리춤 단추가 바지 매무새를 더 빛내주기라도 하는 걸까. 화장실 가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이용 패션을, 요도 괄약근이 느슨해진 60대 중반이 입기엔 무리인가. 만만찮은 패션 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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