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임종수 행정원장 칼럼

블로그_따뜻한 사람들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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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의 조건

 

  늦은 퇴근길. 병원 앞 지하철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유리창에 비친 사람이 몹시 지쳐 보인다. 오늘 하루도 빼곡한 일정 속에 숱한 이들을 만났다. 마음 편히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면 모를까. 서로 속내를 감춘 채 제 욕심의 극대화를 노리는 이들과의 만남은 늘 일생을 걸듯 최대의 소모전을 짐작해야 한다. 가용 가능한 모든 신경세포들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하다 보면 파김치가 된 유리창 속 인물은 어느새 허상을 쫓는 불나방에 다름 아니다.

  이럴 때 여름철 한줄기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주는 게 있었으니, 부산은행에서 지하철역 승강장에 붙여놓은 시 한편이다. 요즘 부암역 승강장에서 퇴근길 직장인들을 응원해주는 시는 시민 공모전 당선작이라고 했다. 내 얼굴과 함께 오버랩 되는 시에 담긴 메시지가 좋다. ‘이름 모를 / 꽃을 / 가만히 바라보는 것 // 엄마 손을 / 꼬옥 붙잡고 지나가는 / 아이를 보고 / 미소 짓는 것 // 그대는 / 이미 / 좋은 사람 (조현우님 ‘좋은 사람’)’

  오늘 하루 나는 이름 모를 꽃을 가만히 바라봤나. 잠시 업무 미팅하러 나섰다가 특유의 역하면서도 강한 향에 이끌려 도로변 꽃댕강에 눈길을 주긴 했다. 출근길 샤넬 같은 달달한 향을 뿜어내는 금목서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그럼 나는 이미 좋은 사람? 엄마 손에 이끌려가며 떼쓰며 시끄럽게 우는 아이에게, 미소 대신에 미간을 찌푸렸던 나는 이미 좋은 사람 되기는 걸렀는가.

  요즘 부암 지하철역 승강장 유리창에 나붙은 시를 보면서 ‘좋은 사람’의 조건으로 하나 더 보태고 싶다. 하루에 한번쯤 거울 속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도 ‘이미 좋은 사람’이라고. 온통 남 ‘탓’ 하는 세상. 내 안에서 ‘잘못된 일이나 부정적 현상을 야기한 원인이나 까닭’을 찾아보려는 이가 어찌 나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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