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한 숟가락 자가격리 중 혼자 밥을 먹는데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식탁 위에는 아내가 미리 준비해둔 반찬들이었다. 김과 고추장아찌, 미역무침, 콩나물무침에 순두부찌개와 고등어찌개. 늘 대하는 낯익은 것들이었지만 요즘엔 자꾸 어머니와의 기억이 조미료처럼 가미된다. 고등어 살점 한 점을 집어 입속으로 넣는데 시간은 어느덧 열여덟 고교 1학년 시절로 되돌아간다. 같은 학교 1학년과 3학년이었던 우리 형제는 어려운 살림 탓에 학교 근처서 자취생활을 했다. 미리 가져온 1주일 치 엄마표 반찬에 냄비밥만 지으면 그만이었지만, 그마저
투표 역대 어느 선거가 이렇게 망설여졌던 적 있던가. 어머니 상중 내내 가족친지들도 자연스레 대통령 선거 이야기였고, 유력 후보들에 대한 자질시비만 입에 올렸다. 내 삶을 바꿔준다는 정책 얘기는 없었다. 누구는 이래서 싫고, 그렇다고 또 다른 누구는 짜증스럽다며 퉤퉤 침 뱉듯 지껄인다.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는 선거벽보에서 십 수 명의 후보들이 ‘제발 내게 대한민국을 맡겨 달라’고 하소연해보지만, 그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죄다 지금 잘근잘근 씹고 있는 둘 중 한 후보가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책임진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마스크와 메라비언 법칙 코로나 팬데믹 3년째 접어들면서 마스크는 신체의 일부가 됐다. 덕분에 호흡기질환자가 크게 줄어들었고, 마스크 속에 숨어버린 익명성 보장이라는 망외의 소득도 주어졌다. 하지만 대체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당장 숨 쉬기 힘든 건 차치하고라도 일상 속에서의 마스크 소통이 여러 부작용을 불러온다. 마스크 쓰고 진행하는 직원 채용면접에서 옥석 가리기가 영 수월찮다. 코로나 방역효과를 생각해서 쓴, 꽉 막힌 마스크 소통은 말하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는데다, 목소리 톤이나 음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불편하기
성남, 그리고 희망 서울 근처 경기도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발령받은 형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부부교사였던 형과 형수는 늘 시간에 쫓겼다. 게다가 조카가 태어나면서 더욱 그랬다. 몇 년 서울서 버티다가 결국 경기도로 이사했다. 분당 신도시에 전세 아파트를 장만했다. 당시 다들 ‘분당’을 경기도의 ‘강남’이라고 해서, 형 부부도 꿈에 부풀었고 이를 지켜보는 나까지 괜히 우쭐해졌다. 나는 그때 ‘분당’을 도시이름으로 알았고, 성남은 그 안의 작은 행정구역쯤으로 인식했다. 분당 사는 사람들도 “성남에서 살고 있다”고
공허감 주말 오후 서울 출장을 마치고 병원 사무실에 가려다가 멈칫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어머니가 입원해 계셨던 요양병원 쪽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공허감이 몰려왔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날 오전 공항 탑승장 안에 들어가려고 지갑에서 무심코 꺼낸 주민증도 어머니 것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사망신고를 처리하려고 내가 지갑 속에 보관하고 있었던 거다. 어머니는 평생 고향 사천의 노루밭 고향집에 적(籍)을 두고 있다가 불과 4개월 전 부산 아들집으로 이사(?)했다. 그마저 병상생활 탓에 단 하룻밤도
엄마꽃은 연꽃 오래된 사진 속에 / 어여쁜 당신의 얼굴 / 청춘의 달콤했던 꿈들은 모두 / 과거로만 남아버렸나 / 아들딸을 키우시느라 / 버려야만 했던 것들 / 후회한 점 없으시다는 / 나밖에 모를 사람 /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 눈물이 나요 눈물이 나요 / 나 땜에 변한 것 같아 / 그래도 온 세상 제일 예쁘다 / 엄마 엄마 우리 엄마꽃 // 못난 자식 걱정하느라 / 뭉그러져버린 가슴 /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 티 낼 수 없는 사람 /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 우리 엄마 젊었을 적에 / 눈물이
세월의 느낌 언뜻언뜻 일상 속에서 세월의 느낌이 마음 깊숙이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주방에서 엎질러진 물기를 닦고는 헹군 걸레를 무심코 꽉 짜다가 손목에 불편함을 느낀다. 감당하지 못할 무게감에 손목 관절의 통증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수십 년 그래왔듯, 머릿속에 저장돼 마치 컨베이어벨트 작업처럼 손에 힘을 가했을 뿐인 데도 손목이 아팠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꽉 닫힌 고추장 병뚜껑을 열려는데 너무도 뻑뻑했다. 물기 묻은 손이 미끄러워 고무장갑까지 끼고 다시 도전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뚜껑을 열었으나, 시큰거리
중국인의 선물 부산 온종합병원이 며칠 전 중국인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선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중국인의 선물이어서 더 귀하게 여겨졌다. 가로세로 크기가 120×55㎝짜리 대작이었다. 정성 또한 대단했다. 아주 작은 인조다이아몬드 보석 수만 조각들을 촘촘히 박아 넣어 ‘최후의 만찬’을 완성했다. 선물의 주인공은 중국 헤이룽장성 다칭시에 사는 올해 50세 중국여성 도 모씨. 그는 10여 년 전,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과 해외 의료봉사로 인연을 맺고 있던 한 한
코로나 불감증인가 휴일 점심 무렵 아들과 함께 외식을 하게 됐다. 범어사 인근에 문을 연 불교박물관을 들러보고 시간이 어중간해서 끼니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식당을 찾았다. 밥 때가 됐서 일까, 식당마다 사람들로 넘쳤다. 크게 배고프지 않았던 나는 맛을 고집하기보다는 안전한 데에 가고 싶었다. 연일 폭증하는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서다. 집 근처에서 비교적 홀이 넓은 국수집으로 갔으나,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여름에나 이용하는 홀 밖 테이블까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날씨까지 봄 햇살이 내리쬐듯 따스하다보니 그동안 겨울과
편의점 식사 출근하자마자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이 따끔따끔하게 아파서 코로나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홀로 사무실에서 일했다. 점심 무렵 허기졌지만 음성결과를 받기 전까지는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드나드는 직원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식당에 가는 것도 손님들에게 엉뚱한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그때 떠오른 데가 편의점이었다. 아파트 근처 편의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맛있는 편의점’이라는 홍보문구가 가끔 입맛 당기게 했다. 도시락이나 김밥에 라면, 햄버거로 간단히 한 끼 식사를 때우기는 편의점만 곳도 없다는
피부건조 샤워기로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는다. 메마르고 거칠어진 피부가 물기를 머금으며 비로소 잃었던 윤기를 되찾는다. 이 순간이 행복하다. 나이 들면서 점점 피부가 건조해지고 주름지며 거칠어진다. 끈질기게 쫓아오는 세월을 언제까지 피할 수 없을 줄 알면서도 서글퍼진다. 건조해진 피부는, 가뭄에 쩍쩍 갈라 터져 마치 유년의 고향 논바닥과 같다. 메마름의 뒤끝은 가려움이다. 몸속 수분이 점점 빠져나가고 제때 보충이 어려워진 걸까. 아내가 마련해준 바디크림으로 온몸에 보습을 노려보지만 제품의 선전 문구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습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 금정산 산복도로 주변이 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서동 우리 아파트에서 범어사 쪽으로 1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산자락에 건물이 지어졌다. 아마도 식당이나 커피숍이 들어올 모양이다. 작은 텃밭이 있었지만 석축으로 쌓인 언덕배기 탓에 건축행위가 이뤄질 것이라고 짐작조차 못했다. 산복도로를 따라 거기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8층 돼 보이는 제법 큰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다. 교육시설이라고 돼 있었다. 그곳 역시 공사 전에는 금정산 산자락이었다. 낮은 석축 위에 듬성듬성 숲이 이뤄져 있었다. 큰 건물이 들어설
하늘 쳐다보기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서 문득 아침 하늘을 쳐다본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요 며칠 동안 회색빛 하늘이었다. 중부지역에선 회색하늘이 새하얀 서설을 뿌려댔다지만, 따뜻한 남쪽 하늘 아래에 사는 내겐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파란 도화지 하늘은 캔버스 같다. 지상의 모든 꼭대기들이 하늘 도화지에 그려진다. 무채색 아파트 옥상이 높다란 우쭐함을 내려놓고 높은 하늘 발아래 다소곳이 머리 조아리고 있다. 굴욕감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외려 그 황량한 질감에서 봄 아지랑이처럼 생명이 아른거리는 듯하다. 아파트 옥상
부화뇌동 끼이익! 자동차 경적소리에 깜짝 놀랐다. 길을 건너던 어르신들이 화들짝 뒷걸음질로 몸을 피한다. 교통신호등에 맞춰 쏜살 같이 달려오던 승용차가 급정거했다. 큰일 날 뻔했다. 퇴근길 구서동 금정교 도로 부근서 남녀 어르신 대여섯 분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이었으나, 건너편 차도 역시 같은 색깔 신호 때문에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있었다. 어르신 일행 중 잘 차려입은 한 분이 횡단보도로 성큼 들어섰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일행도 무심코 그의 뒤만 졸졸 따랐다. 앞장선 이가 길 한복판에 이르렀을 즈음 일
반려식물 돌보기 새해 새 식구로 맞아들인 로즈마리가 시들하다. 설날 집근처 법기수원지에 들렀다가 향이 좋다며 직접 입양한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보금자리를 틀고, 물도 한 번씩 흠뻑 주고 했는데도 왜 그럴까. 다시 인터넷을 뒤져서 로즈마리 육아법을 탐색했다. ‘로즈마리는 조금 건조한 환경에서 빛을 좋아한다. 물은 겉흙이 마르면 주고, 잎이 시들시들할 땐 흠뻑 준다.’ 잘난척하는 인터넷이 시키는 대로 아내가 로즈마리에게 물을 흠뻑 끼얹었다. 반려식물 키우기도 자식 못지않게 손길이 많이 들어간다. 대
코로나검사 소동 주말 늦은 밤 병원에서 보내온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일순 내 몸은 두려움으로 굳어졌다. 낮에 검사했던 코로나 PCR검사 결과 통지문이었던 거다. 스마트폰의 액정을 터치하는 손끝이 가볍게 떨리고, 가슴이 방망이질 하듯 콩닥거렸다. ‘○○○님 2022. 02. 19. 코로나 PCR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속항원검사 포함해서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코로나 검사결과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침을 삼키는데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 이물감마저 느껴졌다. 아아!, 하
돌연사 위기 오후 세시쯤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다급한 것으로 미뤄봐 환자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됐다. “선배, 손아래 동서가 멀쩡히 출근했다가 심장 때문에 지금 거기서 시술한답니다. 상태가 어떤지 걱정입니다. 이제 겨우 오십인데…” 후배의 동서는 사업 때문에 무척 바쁘게 지낸단다. 그날도 할일이 많다고 하면서도 씩씩하게 출근했는데, 오후에 가족들이 뜬금없이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엄청 놀랐다는 거다. 환자는 거의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을 찾았으며, 관상동맥 3곳이 거의 막혀 곧바로 관상동맥중재술을 해야 한다는 통보였다
새벽배송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에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내가 전날 밤 주문했던 ‘껍질째 먹는’ 사과였다. 아침마다 식사대용으로 챙겨먹던 사과가 떨어진 것을 뒤늦게 안 아내가 불과 10여 시간 전에 인터넷 주문했던 거다. 참 빠르고 편리한 세상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옷이나 책을 인터넷으로 배송 주문해왔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 기다려야 했다. 새벽배송은 그야말로 로켓배송이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주로 과일이나 채소, 생선 같은 신선 물건들을 새벽배송으로 구매한다고 했다. 인터넷 주문하는 ‘
부산역 돼지국밥집 점심시간을 살짝 놓쳤다. 그날따라 돼지국밥이 무척 당겼다. 배는 고팠지만 그냥 인근 식당으로 뛰어가서 허기만 지우기는 싫었다. 이왕 늦은 김에 맛 집에 가기로 했다. 서둘러 차를 타고 부산역 근처 맛집으로 다가서니 수십 명이 문 앞에서 줄지어 서 있었다. 이들은 나처럼 끼니 시간을 놓쳐보이지는 않았다. 죄다 젊은이들이었다. 블로그 등 SNS를 통해 부산역 근처 돼지국밥 식당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나 역시 출장길에 부산역으로 갈 때마다 근처 돼지국밥집 앞에 늘어선 손님들의 긴 줄을 목격한다. 주로
새마을부녀회 임인년 정월 보름 밥을 얻어먹었다. 우리병원 인근 동네 새마을부녀회에서 지난 연말 김장김치를 보내준 답례라며 정월 대보름 절식(節食)을 보내왔다. 찰진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는 맛이 기막혔다. 한 끼 식사뿐만 아니라, 복조리 들고서 보름 약밥을 얻으러 다녔던 정월 대보름과 절식의 추억까지 소환하는 기쁨을 더했다. 순전히 새마을부녀회 덕분이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새마을운동을 알게 됐고, 마을에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졌으며 새마을부녀회도 그즈음 탄생했으리라 짐작된다. 새마을부녀회는 농촌생활개선, 저축 장려, 가족계획사업 등